홍제뉴타운 2구역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1월 사업시행 인가를 얻었지만 여전히 ‘재개발 철폐’가 새겨진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뉴타운 열풍은 2008년 18대 총선 수도권 승패를 가르기도 했다. 당시는 사업지구로 지정만 되면 부동산 자산가치가 폭등해 너나없이 추가 지정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49개 지역구 가운데 40곳을 싹쓸이했는데, 이중 절반이 넘는 23명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선거가 끝나고 열풍은 곧 ‘역풍’이 되어 돌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아파트 거래가 뚝 끊어지는 등 재개발 사업은 더 이상 매력적인 자산 증식 모델이 아니었다. 시범지구에 들어선 미분양 아파트가 2억 원 가까이 덤핑 판매되는 등 뉴타운은 하나둘씩 멈추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 나선 김황식 국무총리는 “뉴타운 사업은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실패한 정책”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대적인 ‘출구전략’을 선언했다. 그 결과 2013년 8월 창신·숭인 뉴타운 지구가 서울시 뉴타운 가운데 처음으로 구역해제됐다. 지난 7월에는 가리봉동 뉴타운이 추가로 해제됐다. 일정 기간 사업에 진전이 없으면 자동으로 구역해제되는 ‘뉴타운 일몰제’가 시행되면서 사업해산 지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 3월 말 기준, 서울시내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균촉지구)는 총 238개 구역에 달한다. 추진단계별로 살펴보면 △구역지정 66개 △추진위원회 설립 36개 △조합설립인가 44개 △사업시행인가 40개 △관리처분인가 9개 △착공·준공 43개 구역이다.
이 중에는 이미 10년 넘게 뉴타운을 완성하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함에도 시장이 바뀌자 사업이 멈췄다고 하소연한다. 박 시장이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전임 시장 행정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개별 현장을 통해 본 불만의 양상은 이렇다. 서울 서대문구 균촉지구 가운데 가장 빠르게 구역지정을 끝냈던 홍제 2구역은 예정대로라면 지하 4층, 지상 18층의 H 아파트 906세대가 들어서야 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7년간 개발에 찬성하는 조합 측과 반대하는 측이 대립하면서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했다. 홍제 2구역은 일부 상가주 반대가 사업추진에 걸림돌이 되자 대로변 상가를 구역에서 아예 제척하고 한 차례 설계변경을 실시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1월 가까스로 사업시행인가를 얻었다.
지난 8월 27일 기자가 직접 찾은 홍제 2구역은 여전히 ‘재개발 철폐’가 새겨진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갈등의 핵심은 추가 분담금이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홍제 2구역은 추가분담금을 1억~5억 원까지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결국 사달이 났다”며 최근 관리처분인가를 앞두고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홍제 2구역 재개발 반대 운동을 이끄는 한 인사는 “이곳은 75세대가량이 33㎡(약 10평) 미만으로 자산을 평가받은 소시민들이 많다. 조합에서는 자산가치가 5000만~1억 원뿐인 사람들에게 중대형 평수로 분양 신청을 유도했다. 여의치 않으면 임대 주택을 주겠다고도 밝혔지만 그건 조합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사업을 멈추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개발 반대 인사는 “국회고 청와대고 불을 확 싸지르고 싶다”며 “본인 의사에 상관없이 재개발 지구로 지정 당해 집을 안 빼앗기려면 수억 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 이게 쫓아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복지정책 다 필요 없고 내 재산 지킬 수 있게만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홍제뉴타운 2구역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붙인 벽보.
현실은 여의치 않다. 해당 구역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이곳은 내년 봄이면 이주가 시작된다. 법적으로도 7년 넘게 이어진 사업을 멈추게 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시·구청에서 신속하게 추진해 분담금이라도 줄여야 하는데 실상은 사업을 지연시키면서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반발하는 대목도 있다. 사업지구 내 임대주택 건설비율이다. 현재 서울시와 각 구청에서는 임대주택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뉴타운 내 임대 세대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만큼 조합의 분양 세대가 줄어드는 것이어서 분담금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중개업자는 “임대 세대를 늘리면 그만큼 분양 세대가 줄어 사업성이 나빠진다. 생색은 시장과 구청장이 내고 부담은 조합에서 진다”라고 덧붙였다.
사실 홍제 2구역의 사정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재촉지구에서 크든 작든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문제는 시나 각 구청에서 적극 나서기보다 사업 취소를 원한다면 주민 동의 50%를 얻어오라는 식의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는 점에 있다. 출구전략은 세웠지만 직접 구출은 하지 않는다. 그동안 추가 분담금은 어떤 식으로든 쌓이게 마련이다.
더딘 사업 추진으로 박 시장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뉴타운 지구도 있다. 강북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남 뉴타운이 대표적이다. 5개 구역으로 나뉜 한남 뉴타운 사업지구 가운데 한남 2구역은 “서울시가 정당한 이유 없이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건축심의를 1년이나 지연시켜왔다”라며 지난 3월과 4월 박 시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신문 광고를 총 7회나 실어 이목을 끌었다.
한남뉴타운은 지난 6·4 지방선거 당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박 후보는 (뉴타운 사업) 방치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해서 한다면 범죄나 다름없다”라며 신속한 추진을 약속해 박 시장과 차별화를 꾀했던 곳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성장현 용산구청장 역시 “한남뉴타운은 사업이 10년간 진척이 없어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다. 행정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서라도 뉴타운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한남 2구역에 위치한 S 부동산 대표는 “현재 이곳은 상권이 형성된 일부 지역에서 제척을 요구하며 대립하고 있다. 여기가 해제되면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 조합이 설립됐다는 것은 원주민 75% 이상 찬성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시와 구청에서 10% 내외의 반대하는 주민들 뜻을 과다하게 들어주는 상황”이라며 “한남 2구역은 조합 설립 때 동의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개발 의지가 강한 곳이기에 구역 해제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신속하게 추진되도록 유도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인근 H 부동산의 관계자는 “박원순 시장 재선 임기 동안에는 제때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시장 정도 되는 사람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며 “재개발 사업은 일단 조합이 설립되면 그다음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단계를 줄여 나갈수록 비용절감이 된다. 이미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어갔는데 중도 포기하면 결국 주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원주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임 시장의 잘못된 행정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업 진행을 의도적으로 늦추고 있는 것 아니냐며 비난하기도 한다. 한남 2구역에 빌라 2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문 아무개 씨는 “나 역시 박 시장 임기 때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며 “뉴타운 사업은 서울시가 먼저 나서서 추진한 것이다. 자신들이 약속해 놓고 상황이 달라졌다고 무조건 반대하면 10년간 재산권을 침해당한 우리는 어디 가서 하소연하느냐”라고 전했다.
뉴타운 사업은 시작도 끝도 정치의 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뉴타운 출구전략의 진정한 의미는 정치적 탈출에 있다”라며 “수도권 노후주택 정비의 목표는 더 이상 자산 증식이나 규모 확대가 되기 어렵다. 부동산 경기나 인구구성 측면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