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전경. 사진제공=시사저널 | ||
생전에 최 씨가 자신의 자녀(3남 6녀) 가운데 가장 아꼈다고 전해지는 S 씨. 그가 선친에 이어 지금 박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의심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그의 남편 정 아무개 씨가 최근까지 박 전 대표의 입법보조원을 지낸 측근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살고 있는 주소지 역시 강남 인근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 사람의 관계가 아주 친밀하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일단 박 전 대표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무책임한 음해”라며 단호히 일축하고 있다. 박 전 대표와 S 씨의 관계는 언제부터였으며, 어느 정도일까. 과거 기록을 더듬어가 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S 씨 소유의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소재한 두 채의 빌딩이다. 서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이 빌딩은 각각 4층과 7층짜리 건물이다. 두 빌딩의 시세는 총 2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4층 건물에 S 씨가 운영하는 C 유치원이 위치해 있고, 7층 건물에는 S 씨와 남편 정 씨가 번갈아가며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J 사’가 있다.
이 부동산이 논란이 되는 것은 “최태민 씨는 물론 그의 딸과 사위 등의 재산형성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거액의 부동산 자금 출처가 의심된다”는 의혹 제기 때문이다.
특히 <월간조선>은 최근호에서 ‘한때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최 씨의 재산을 조사한 적이 있던 A 씨는 “박근혜 씨를 처음 만났던 시기에 최 씨는 불광동의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전화기도 없이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랬던 그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재산을 환수당할 때에는 엄청난 거액을 지니고 있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히고 있다.
비록 친인척 관계는 아니지만 박 전 대표는 측근으로 의심받는 S 씨 부부의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검증을 요구받고 있다. 마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처남 김재정 씨의 재산 내역에 대한 검증을 요구받는 것과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박 전 대표와 최 씨의 딸 S 씨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양측이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확인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과거 기록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박 전 대표가 82년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은 지 8년 만인 90년 11월 동생 근령 씨에게 이사장직을 넘기고 전격적으로 사퇴했다. 당시 이 내용은 언론지상에 주요 화제로 취급됐다. 이사장직을 놓고 자매 간의 다툼 양상으로 비춰진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내분의 직접적 원인은 최 씨였다. 근령 씨는 “언니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최 씨의 퇴진을 요구할 뿐, 언니더러 물러나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박 전 대표는 “최 씨 등을 물러나라고 한 것은 나를 물러나라고 한 것과 같다”며 끝내 사퇴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육영재단 내의 내분은 그때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4년 앞서 86년경부터 내부는 심각한 갈등 양상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회관 관장이 수시로 교체되고 재단 내에서 발행되던 잡지 <어깨동무>의 편집국 직원들이 집단으로 사퇴하는 등 상당히 곪아 있는 상태였다는 전언이다.
결국 내분은 폭발했다. 87년 9월 2일 직원 150여 명이 ‘어용 간부 퇴진, 족벌인사 체제 종식’ 등을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간 것. 당시 사태 7일 만에 양측은 합의를 도출해서 농성이 끝난 관계로 이 사태는 크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당시의 내분 사태를 비교적 자세하게 다룬 한 여성지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중앙> 87년 10월호는 ‘어린이회관 직원들은 박근혜 이사장의 최측근인 최태민 씨가 육영재단에 관여한 이후 86년부터는 재단 문제뿐만 아니라 회관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마치 회관이 사기업과 같은 운영체제로 바뀔 위기에 놓이게 됐다며 농성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이가 바로 S 씨다. 당시 농성 직원들은 S 씨가 부친의 육영재단 내 영향력을 등에 업고 <어깨동무>의 편집에도 간여하는 등의 전횡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시기에 S 씨가 잇따라 설립한 학원 및 연구소가 육영재단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S 씨가 지금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강남의 C 유치원도 이때 등장하고 있다. 86년 3월 개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유치원은 개원 직후 어린이회관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C 유치원과 이보다 앞서 85년 1월 개원한 C 종합학원은 강남에서 초현대판 시설을 자랑하며 육영재단이나 어린이회관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S 씨는 86년 10월 한국아동교육문제연구소도 개설했다. C 유치원과 학원의 원생들은 어린이회관 시설을 수시로 이용했고, 당시 이사장이었던 박 전 대표와도 여러 번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는 <어깨동무>의 편집에 관여하기도 했다. 당시 농성 직원들은 이런 점을 문제 삼아 최 씨보다도 오히려 딸 S 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S 씨는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박 이사장과 알게 된 것은 86년 어린이회관에서 처음이었다. 그해 3월 유치원을 개원하고 운동장이 필요해서 애를 먹던 터라 송재관 어린이회관 관장의 중재로 어린이회관과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다. 자매결연이라고 해서 대단한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박 이사장과 따로 만난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내용이 발견된다. ‘학원(유치원) 건물에 대해서도 의혹이 많다’는 질문이 그것. C 유치원 건물에 대한 의혹이 당시부터 이미 제기된 셈이다. 이에 대해 S 씨는 “처음 유아교육을 시작할 때는 세를 얻어서 했다. 현 유치원 건물 자리는 원래 침수지역인데 오래전에 사두었던 곳이다. 세든 건물을 비워달라고 해서 은행 융자를 얻고 전세금 뺀 돈과 집에서 돈을 보태 지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시 인터뷰 시기는 87년 9월이었다. 실제 S 씨 소유의 토지 및 건물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S 씨는 신사동 4층 건물의 부지를 85년 9월 임 아무개 씨와 공동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듬해인 86년 12월 이 부지에 4층 규모의 빌딩을 건립한 것. 이 빌딩의 소유주는 S 씨였다. 그리고 토지도 87년 5월 임 씨로부터 절반의 지분을 넘겨받아 완전한 S 씨의 소유가 됐다. 그리고 4개월 후 인터뷰가 이뤄진 셈이다. 따라서 S 씨의 해명은 이 건물에 대한 것으로 보여진다. ‘오래전에 사둔 것’이라는 그의 해명과는 달리 85년 9월에 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최 씨가 한창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육영재단 일에 관여할 때이고, S 씨 역시 C 학원을 개원한 이후였다.
S 씨는 이 인터뷰 이후인 88년 7월 건너편 7층 건물의 부지를 두 사람과 함께 공동 매입했다. 그리고 88년 12월과 96년 7월 각각 두 사람의 지분을 모두 인수해 단독 소유자가 됐고, 2000년부터 여기에 C 유치원을 설립해서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2003년 지금의 7층 건물을 건축했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대학에서는 유아교육과 상관없는 과를 전공했으나 뒤늦게 독일에서 3년 동안 유아교육 공부를 하고 돌아와 86년 학원 문을 열었다”며 당시 파문에 대해서도 “박 이사장의 요청으로 자문을 한 게 그들의 주장대로 ‘편집권의 침해’였다면 박 이사장에게 미안할 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육영재단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90년 11월 이사장이 박 전 대표에서 근령 씨로 바뀌면서 사실상 최 씨와 S 씨는 재단과의 관계가 거의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학원 초창기인 85~86년부터 한껏 유명세를 탔고, S 씨의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학원은 이후에도 계속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S 씨의 오늘날 재산 형성의 기초가 C 학원일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셈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