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5년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오정소(왼쪽), 신건 씨. | ||
하지만 보직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국정원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는 2차장이었다. 그만큼 국내담당 정보를 총괄하는 사령탑의 역할이 크기 때문. 전직 국정원 출신의 B 씨는 “이종찬 원장 부임 후 해외 파트를 강조하는 상징적 조치로 1차장과 2차장의 순서를 바꿨지만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갖는 업무의 중요도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고 밝혔다.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자리인 ‘국정원 2차장’은 악역을 도맡기도 했고, 퇴임 이후 순탄치 않은 행보를 걷기도 했다. 이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YS 정권은 정보기관의 폐해 청산에 큰 역점을 뒀고 ‘국민에게 안기는 안기부’를 표방하기도 했다.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남산 청사를 철폐하고 지금의 내곡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정도가 다를 뿐 정보기관이 정권에 이용당한 것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과 흡사했다.
YS 정권 시절 안기부 국내담당 1차장은 황창평, 정형근, 오정소, 박일용 씨 등이었다. 이 가운데 황 씨와 정 의원은 95년 2월에 불거진 안기부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 검토 여론 수집’ 공문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 문건은 황 씨가 1차장이었던 당시 정 의원이 실무를 담당했다. 이 파문이 불거지면서 당시 황 씨에 이어 1차장에 올랐던 정 의원은 불과 3개월 만에 해임됐고 이후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특히 YS 정권의 안기부는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정보 및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다른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실제 현철 씨와 경복고 고려대 동문으로 알려진 오정소 씨는 김기섭 전 기조실장과 뜻을 맞춰 고급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미림’ 팀을 재구성한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수집한 고급 정보를 ‘윗선’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 2005년 미림 팀의 도청 파문이 불거졌을 때 오 씨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됐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관계로 구속은 면했다.
경찰청장 출신의 박 씨는 ‘북풍 사건’으로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함께 구속되기도 했다. 북풍 사건이란 97년 대선 당시 안기부가 야당인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불법 정치 공작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는 98년 9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DJ 정권의 국내담당 차장들의 말로는 더 불행했다. 초대 2차장이던 신건 씨는 지난해 미림 파문 당시 불법 도청에 관여한 혐의가 인정돼 구속됐다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와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구설을 낳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2차장이 된 엄익준 씨는 재직 중인 2000년 5월 간암으로 순직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지병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보인 열정적인 공무활동이 높이 평가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국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관여했다는 불명예스런 평가도 공존하고 있다.
전직 국정원 출신의 B 씨는 “이종찬 씨에 이어 99년 5월 국정원장이 된 군 출신의 천용택 씨는 정보부서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점에서 전임 이 씨에 대해 다소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내부 조직의 요직을 대부분 바꾸는 등 이 전 원장의 잔재를 완전히 다 없앴다. 그리고 정보 강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과거의 ‘전사’(정보전문가)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엄 차장은 그래서 등장한 것이다. 솔직히 이 전 원장은 실세로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동교동 권력 실세들에게 많이 시달렸다. 처음에 권력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동교동 가신들이 K 씨를 필두로 전면에 나서며 국정원도 흔들었다. 정치 정보가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엄 씨를 다시 기용하라는 동교동의 압력을 이 전 원장은 끝까지 거부했지만 결국 이 원장이 물러나면서 동교동 가신들의 박수를 받으며 엄 차장이 재등장했다”고 비화를 밝혔다.
그 뒤를 이은 두 명의 2차장들은 더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다. 김은성 전 차장은 자신이 2001년 11월 국정원을 떠난 지 불과 한 달 만에 국정원 차장 재직시 벌어진 진승현 게이트 연루 혐의로 전격 구속 수감된 바 있다. 김 씨는 2005년 불법 도청 혐의로 다시 구속 수감된 도중, 셋째딸의 결혼식에 참석케 해달라고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셋째딸은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DJ 정권의 마지막 2차장을 지낸 이수일 씨 역시 미림 파문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던 지난 2005년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