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 대통합 지난 2005년 9월 16일 당시 총무원장이던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조계사에서 치러졌다. 법장 스님은 2002년 총무원장이 된 이후 ‘일승회’를 만들어 이른바 여권 세력을 통합했다. | ||
신 씨의 허위 학력 문제를 처음 들고 나왔던 장윤 스님, 신 씨의 동국대 교수 특혜 임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홍기삼 전 총장, 사태 초기 신 씨를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동국대재단 이사장 영배 스님과 이사 영담 스님, 그리고 이번 파문에 애써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이들은 불교계 내에서 ‘범여권’과 ‘야권’으로 갈린 채 첨예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교계의 뿌리 깊은 범여권과 야권의 대립으로 파생된 신 씨 파문이 정치권의 범여권 대 야권 대립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일각에선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 씨의 부적절한 관계는 불교계의 거대한 음모와 암투에 비하면 차라리 에피소드에 가깝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신정아 씨 파문은 조계종과 동국대재단이라는 불교계 두 권력층의 주류 세력의 반목과 대립에 따른 결과다.”
한 불교계 NGO 단체에 있는 모 인사의 촌평이다. 그는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조계종 총무원을 장악하고 있는 ‘무량회’ ‘무차회’ ‘화엄회’ 등의 범여권 세력과 동국대재단을 점령하고 있는 ‘보림회’ ‘금강회’ 등의 야권 연합 세력의 대결로 정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 씨 파문과 불교계의 함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불교계 파벌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교계가 개혁의 몸살을 앓은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94년이었다. 당시 개혁의 타깃은 서의현 총무원장이었다. 그는 86년 25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이후 한 차례의 연임을 거쳐 94년까지 8년 동안 불교계의 수장을 지냈다. 군사정권에 이어 문민정부까지 권력층에 손을 대며 그는 94년 3선 연임에 도전했다.
때마침 정치권에서 ‘상무대 비리사건’이 폭로됐고, 여기에 서의현 총무원장 등 불교계 수뇌인사들의 금품수수 관여 정황이 드러나면서 불교계의 개혁세력이 들고 일어났다. 이때 종단개혁을 이끌었던 핵심 세력이 바로 ‘실천승가회’와 ‘금강회’ ‘보림회’ 등이었다. 조계종 내에서는 구여권에 속하는 보수성향의 ‘직지사단’도 개혁이라는 대세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서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나고 월주 스님이 총무원장에 올랐으나 오히려 이후 불교계에는 극심한 파벌 간의 대립과 반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절대 권력이 무너진 이후 여러 파벌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했던 정치판의 모습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교계 내의 유력 4대 파벌은 98년 총무원장 선거를 계기로 뚜렷하게 갈라졌다. 개혁을 함께 주도했던 실천승가회와 금강회는 결별했다. 실천승가회는 직지사단과 손을 잡고 지선 스님을 총무원장 후보로 내세웠다. 직지사단은 당시만 해도 녹원 스님을 전면에 내세우며 동국대재단을 장기 독점하고 있던 가장 큰 주류세력이었다. 금강회와 보림회는 “실천승가회가 권력에 맛을 들였다”며 비난했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탐낸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신정아 씨 파문이 불교계의 파벌다툼과 관련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얼마 전에는 그의 학력도 논란에 휩싸였다. | ||
보림회는 정대 스님을 당선시키면서 조계종 총무원을 장악한 여세를 몰아 2002년 교계 권력의 다른 한 축인 동국대재단마저 손에 넣었다. 당시 동국대재단은 직지사단의 녹원 스님이 12년간 장악하고 있었고 그 문중의 핵심인사가 바로 장윤 스님이었다. 당시 영담 스님 등은 재단 회계비리 등의 문제점을 집중 제기하며 직지사단을 밀어낸 것. 이로써 정대 스님은 2002년과 2003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재단이사장을 겸하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누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졸지에 불교계 권력을 완전 장악하게 된 보림회지만 이후 그 견제와 도전은 더욱 거셌다. 그 첫 번째 대결장은 2002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실천승가회와 직지사단이 내세운 법장 스님이 보림회가 내세운 종하 스님을 물리치고 당선됨으로써 ‘정권’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법장 스님은 자신의 우호세력을 더욱 공고히하기 위해 두 연합세력과 일부 무소속의 구여권 세력까지 흡수해서 ‘일승회’라는 거대 조직을 만들었다. 조계종 총무원의 여권 세력을 통합한 셈이다.
보림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03년 정대 스님의 입적 이후 공석이 된 동국대재단이사장 선거에서는 보림회와 금강회가 민 현해 스님이 일승회가 내세운 지관 스님을 1표 차로 꺾고 ‘수성’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불교계의 양대 권력 가운데 조계종 총무원은 일승회가, 동국대재단은 보림회와 금강회가 장악하게 됐다.
법장 스님 입적 이후 현재 지관 스님이 새로운 총무원장이 되면서 일승회는 여전히 여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느슨한 결속력으로 뭉쳐 있던 일승회는 과거 실천승가회 세력이 중심이 된 ‘무차회’와 직지사단 세력이 중심이 된 ‘무량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눠졌다. 여기에 제3의 세력인 ‘화엄회’까지 더해서 이들 세 파벌이 현재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중심으로 공동여권 내지는 범여권을 형성하고 있다.
신 씨 허위 학력을 처음 제기했던 장윤 스님은 바로 무량회의 핵심 인사다. 그는 조계종 총무원을 대표해서 현재 동국대재단 이사로 활약 중이다. 야권이 완전 장악하고 있는 곳에서 어찌 보면 혼자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동국대재단은 다시 되찾아 와야 할 ‘권력’이었다. 현재 동국대재단 이사장은 영배 스님이다. 그는 영담 스님과 함께 보림회의 핵심 인사다.
실제 최초 신 씨의 허위 학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량회 측에서 공개적으로 동국대 재단이사 전원의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보림회는 “불순한 의도가 엿보인다”며 불쾌해 했다. 무량회와 보림회의 오랜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순간이었다.
▲ 지난 8월 28일 승원 스님이 기자회견을 열어 “신정아 씨 문제와 관련, 변양균 전 실장에게 회유나 협조를 부탁받은 적이 없다”는 장윤 스님의 입장을 밝혔다(왼쪽). 그러나 곧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른쪽은 변 전 실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교계 내부의 전언에 따르면 변 전 실장은 경기도 과천의 보광사에 적을 둔 신도로 알려져 있다. 불교계 한 인사는 “과천 보광사의 주지스님은 영담 스님, 영배 스님 등과 함께 보림회의 핵심 인사”라고 전하기도 했다. 변 전 실장은 정대 스님과도 매우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대 스님은 보림회를 상징하는 인사였다. 정대 스님이 추진했던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에 변 전 실장이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는 후문이다. 당시 그는 기획예산처에 고위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동국대재단을 장악하고 있던 보림회, 보림회 지원을 받고 있던 홍 전 총장, 그리고 보림회와 가까웠던 변 전 실장, 여기에 동국대 교수로 특혜 채용된 신 씨 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셈이다.
불교계의 한 인사는 “변 전 실장이 설사 개인적 친분관계로 보림회 측 인사들과 가까웠다 하더라도 그는 현 권력과 불교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인사였다. 지관 스님이나 장윤 스님 등 범여권에서도 변 전 실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변 전 실장의 낙마 이후 “곤혹스럽다”며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 장윤 스님이나 “공식적으로는 모르는 일이다”라며 입장 표명을 회피하고 있는 지관 스님의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보림회와 금강회 측으로서는 더 큰 불똥이 떨어졌다. 마치 자신들이 신 씨의 비호세력인 것처럼 비치면서 그동안 애써 쌓아왔던 개혁 성향의 이미지가 퇴색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영담 스님은 “신 씨의 특혜 임용을 주도한 것은 홍 전 총장이며 이사들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애써 신 씨와 선을 그으려고 하고 있지만 궁색한 변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당장 홍 전 총장 측에 “나만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검찰 내부에서조차도 “홍 전 총장과 영배, 영담 스님은 상당히 밀착된 관계여서 따로 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신 씨 파문이 처음 불거졌을 때인 7월 2일 영배 스님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신 교수의 박사 학위는 가짜가 아니다”고 비호해서 더욱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