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지난해 7월 22일 새벽 4시께 경북 청송의 한 주택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구토를 한 채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이 발견됐다. 이 남성은 인근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 양(당시 18세)의 아버지 B 씨(당시 45세)였다. 부인에게 발견된 B 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B 씨는 자살을 기도하기 몇 달 전부터 잠을 통 이루지 못했다. 밥을 먹다가도 대문을 나서다가도 가슴이 답답한지 주먹으로 가슴팍을 두드리고는 했다. B 씨의 부인은 물론 주변 이웃들도 B 씨의 말 못할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B 씨는 같은 해 4월부터 불거진 고등학생 딸과 관련한 온갖 추문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B 씨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B 씨가 자살을 기도한 가장 큰 이유가 ‘자녀문제’였다는 사실은 경찰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경북 청송경찰서 형사팀 관계자는 “당시 B 씨의 부인과 참고인 진술에서 공통적인 것은 B 씨가 딸의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 이었다”며 “B 씨는 자살 전 딸의 문제로 경찰서를 찾은 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B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 사건의 발단은 교사 최 아무개 씨(48)와 딸 A 양의 부적절한 관계가 밝혀지면서부터 시작됐다. 딸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최 씨와 딸 A 양이 2012년 겨울방학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만남을 지속하면서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최 씨와 A 양은 2011년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났다. 최 씨의 직장이자 A 양의 모교인 경북 청송의 한 고등학교는 전체 학생 수가 60명도 채 되지 않는 학교였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도 많지 않아 한 교사가 연속으로 담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 씨와 A 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최 씨는 A 양의 1·2·3학년 담임선생님으로 A 양의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함께한 각별한 사이였다.
평범한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최 씨와 A 양이 급격히 가까워진 시기는 2012년 겨울방학 전부터였다. 고3을 앞두고 있던 A 양은 2년 넘게 담임을 맡고 있던 최 씨와 상담하는 일이 잦아졌다. A 양은 최 씨와 여러 차례 상담을 하면서 앞으로의 진로와 집안의 소소한 사정까지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다. 학생 수가 적어 친구도 많지 않은 학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고 조언까지 해주는 최 씨에게 A 양은 호의적인 감정을 가졌다. 교사인 최 씨 또한 유독 자신을 잘 따르는 A 양을 아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다른 학생들은 학교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A 양은 달랐다. 이미 남다른 호감을 가지게 된 최 씨와 A 양은 스승과 제자 이상의 감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학교에서 보는 것이 어렵게 되자 두 사람은 학교 인근에서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3월경 A 양이 최 씨에게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두 사람의 위험한 교제는 막을 내렸다. 최 씨는 불안해하는 A 양을 설득해 4월 영천의 한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A 양의 산부인과 진료기록을 알게 된 아버지 B 씨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딸의 임신과 낙태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B 씨는 모든 사실을 학교 교장에게 알렸다. B 씨 아버지에게 내용을 전달받은 교장은 경찰에 진상조사를 의뢰했다. 청송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학교 교장에게 조사 의뢰를 받고 해당 사실을 경상북도교육청에 알렸다. 교육청은 최 씨를 직위해제 시킨 후 진상조사를 벌였다”며 “교육청의 진상조사와는 별도로 A 양의 아버지 B 씨가 지난해 4월 최 씨를 강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직위해제 된 상태에서 교육청의 진상조사를 받았다. 교육청은 두 달간의 징계심의 끝에 지난해 6월 최 씨를 파면 조치했다. 결과적으로 최 씨는 교단에서 퇴출됐지만 최 씨의 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 경찰은 최 씨에게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 발부를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최 씨의 구속영장 발부를 기각했다. 최 씨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하는 데다 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부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최 씨의 영장이 기각되면서부터 아버지 A 씨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최 씨는 경찰조사에서도 줄곧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아이를 책임지려고 A 양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청송경찰서 관계자는 “성관계의 강제성을 입증해야 강간죄가 성립되는데 이 부분에서 수사의 어려움이 있었다”며 “알려진 것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다’는 것은 최 씨의 주장일 뿐이다. A 양은 정확한 의사표현을 한 적이 없다. 이메일과 문자를 보면 강제성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이라고 인정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조그만 동네에서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딸과 관련한 추문과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지난해 7월 22일 아버지 B 씨는 독극물을 마시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해당 고등학교 관계자는 “(A 양이) 크게 충격을 받았지만 학업은 마쳤다”고 말한 뒤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했다.
청송경찰서 관계자는 “영장이 기각된 이후 보강수사가 이뤄졌다. 보강수사를 했지만 검찰에 송치된 것은 A 양의 아버지가 사망한 7월 이후였다”며 “하지만 여전히 성관계의 강제성을 입증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현재는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