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생 재우 씨의 회사를 처분해 추징금을 내게 해달라고 검찰에 탄원해 주목받고 있다. | ||
‘형제 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회사는 경기 용인시의 미락냉장(2004년 오로라씨에스로 변경). 노 전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돈이 이 회사의 ‘종자돈’으로 쓰인 만큼 회사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인 반면 동생 재우 씨는 문제의 돈과 회사의 소유권은 별개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두 형제의 갈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최근 검찰에 뜻밖의 탄원서를 제출했기 때문. 노 전 대통령은 이 탄원서에서 “대통령 재직 당시 본인이 건넨 122억 원의 돈을 동생 재우 씨가 미락냉장 부지 매입 및 설립자금 등으로 썼다”면서 이 회사를 처분해 추징금을 내도록 해달라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아직도 519억 원의 추징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동생 재우 씨 측은 “(그 돈은) 부모님을 모시고 산 대가로 받은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주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만약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돈이 문제가 된다면 원금과 그간의 이자를 지급하면 될 문제지 소유권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재우 씨 측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오로라씨에스의 전 대표 박 아무개 씨가 ‘재우 씨 측이 용인 땅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서 검찰에 진정한 사실도 이번 분쟁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재산 소유권과 박 전 대표의 진정 의도 등을 둘러싸고 형제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게 패인 상황이다.
형제간의 충돌 계기가 된 미락냉장은 이미 지난 95년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을 수사할 당시 은닉 비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루트’ 중 하나로 지목됐던 회사다.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으로 10여 개 부동산과 건물, 법인 등을 언급했는데 이 가운데 동생 재우 씨 명의로 된 서울 반포 소재 동호빌딩과 함께 미락냉장이 포함됐었다.
이후 검찰은 미락냉장을 부동산세탁을 거친 은닉 재산으로 규정해 집중 수사를 벌였고 결국 재우 씨를 소환 조사한 끝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결론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그간 몰수·추징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 2001년 검찰이 재우 씨를 상대로 한 추징금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재우 씨에게 “120억 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따라 검찰은 재우 씨가 소유한 오로라씨에스 지분 30%를 압류 조치한 상태다.
검찰 등에 따르면 재우 씨는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122억 원을 받아 89년 12월 냉장·냉동 물류회사인 미락냉장을 세우고 법인 명의로 용인 상하동 329-2번지 일대 약 5만 2800㎡의 땅을 지난 90년 4월부터 이듬해까지 순차적으로 매입했다. 현재 회사 부지와 건물의 시세는 용인 지역의 개발 붐을 타고 크게 상승해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논란의 쟁점은 노 전 대통령이 동생 재우 씨에게 건넨 자금의 성격이다. 과연 노 전 대통령이 실제 관리를 위탁한 재산이냐는 점을 두고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고 엇갈리고 있는 것.
노 전 대통령 측은 재우 씨에 단순히 관리를 맡긴 돈이라는 주장이고, 재우 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대가로 증여받은 돈이라는 입장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95년 수사 당시 동생이 이 회사에 대한 포기각서까지 검찰에 제출했었다”며 증빙서류까지 첨부한 상태. 반면 재우 씨는 “비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빼돌린 게 아니라 나에게 (집안 일 등) 개인적으로 쓰라고 준 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단 검찰은 재우 씨 측이 노 전 대통령의 돈으로 회사를 세운 뒤 지분을 처분하는 방식 등으로 재산을 ‘보존’하려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우 씨가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회사 지분을 아들 호준 씨에게 순차적으로 넘기는 방법 등으로 향후 회사 부지와 건물, 지분에 대한 추징에 대비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호준 씨나 법인의 명의로 된 부동산과 지분은 추징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검찰의 해석이 일정 부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오로라씨에스의 법인 감사보고서 등을 확인한 결과, 오로라씨에스의 재우 씨 지분이 압류 조치 당하기 전인 2000년을 기점으로 아들 호준 씨의 회사 지분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생 노재우 씨. 지난 95년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되던 모습이다. | ||
또한 오로라씨에스 측이 관계사를 설립하고 이 법인 대표이사로 호준 씨가 취임한 뒤 오로라씨에스 땅 일부가 매매 방식을 통해 관계사에 넘어간 사실도 파악됐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8월 오로라씨에스의 관계사로 시티유통이라는 창고와 부동산임대 법인이 설립됐는데 당시 오로라씨에스 대표이사였던 호준 씨가 이 회사 대표이사를 겸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티유통의 지분 100%가 호준 씨의 몫이었다.
시티유통이 설립된 이듬해인 2004년 4월엔 오로라씨에스 법인 소유였던 용인 상하동 351번지 1만 1402㎡의 부지와 건물이 매매형식으로 시티유통에 넘겨졌다. 서류상으로는 대표이사가 같은 관계사끼리 땅을 매매한 것. 설사 검찰이 추징금 징수에 나선다 해도 이 법인의 지분과 부동산은 건드리기 어렵게 된 셈이다.
박 아무개 전 오로라씨에스 대표이사도 검찰에 낸 진정에서 관계사 간에 매매 형식으로 땅과 건물이 이전된 점을 문제 삼았다. 재우 씨의 고교 후배인 박 씨는 지난 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이 재우 씨 측 부동산관리인으로 지목했던 인물로 지난해 10월까지 호준 씨와 함께 오로라씨에스 공동 대표이사를 지냈다.
박 씨는 시티유통으로 오로라씨에스 소유의 땅과 건물이 넘어간 것을 두고 호준 씨가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감사보고서에는 오로라씨에스가 토지와 건물을 각각 51억 원과 4억 9000만 원에 시티유통에 매각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당시 약 200억 원에 달하던 시가와는 차이가 크다는 주장이다.
취재 결과 그간 재우 씨 측은 오로라씨에스 명의로 기존 부동산 외에 다른 땅과 건물도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5월 서울 청담동의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과 토지를 103억 원에 매입했는데 등기부상 소유권자는 오로라씨에스지만 관계사인 시티유통이 지점으로 활용하면서 빌딩 일부에 임대를 주고 있다. 또한 호준 씨는 공매로 나온 용인 상하동 329-1번지 땅을 지난 2004년 1월 본인 명의로 매입한 후 이듬해 매매를 통해 오로라씨에스로 소유권을 이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탄원대로 냉장회사의 지분을 가압류하거나 공매 등을 통해 추징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박 전 대표의 진정에 따른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재우 씨 측은 “법원 판결에 따라 국가에 원금 120여억 원과 이자를 포함해 총 320여억 원을 지급하면 형과의 채무관계는 없다”라며 회사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 씨 진정 사건에 대해서도 “박 씨가 먼저 퇴직금 등으로 100억 원을 요구하고 협박했다”고 맞선 상황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동생이 자신의 돈으로 냉장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간 모르고 있었다고 탄원서에서 밝힌 점이나, 호준 씨의 재산까지 문제가 있다고 나선 것 자체가 오히려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뒤늦게 동생 재우 씨 일가의 재산을 문제 삼게 된 또 다른 배경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만약 향후 검찰의 추징이 진행된다고 해도 실제 오로라씨에스의 지분 가압류, 공매 등을 통해 추징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압류한 재우 씨 지분의 경우에는 비상장법인이라는 점에서 인수자가 과연 나올지 의문이고, 더구나 아들 호준 씨의 회사 지분은 현재로선 아예 추징 대상이 아니다. 또한 관계사인 시티유통 역시 호준 씨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추징 작업이 쉽지는 않다. 과연 검찰이 형제간에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고 추징금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