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은 영화 <거룩한 계보>의 한 장면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 ||
알몸 신검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폐지 소식이 매우 반가운 일이다. ‘행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알몸 신검을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는 쪽은 없기 때문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알몸을 보는 것도 부담스러운 노릇인데 남의 ‘은밀한 부위’까지 세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교도관들에게도 고통이다. 보여주는 쪽도 마찬가지. 재소자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수치”로 남게 되는 것이 ‘알몸 신검’이다.
지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수원 구치소 교도대에서 근무했던 이 아무개 씨(30·회사원)는 “알몸 검사를 할 때면 교도소를 자주 들락거리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딱 구분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구치소에 넘어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떠는’ 순간이 알몸 신체검사를 할 때라고 한다. 유치장에 있던 ‘미결수’들은 구치소로 호송되자마자 바로 알몸 신검을 받는데 이때 비로소 ‘기결수’가 된 것을 실감하게 된다.
초범들의 경우 신검에 들어가면 눈에 보일 정도로 ‘바들바들’ 떠는 모습을 많이 보여 교도관들이 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한다. 반면 구치소를 꽤나 ‘들락거렸던’ 사람들의 경우 알몸 신검을 하는 순간에도 ‘용 문신’을 과시하며 거들먹거리거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별을 많이 단 사람들’은 금세 구분이 간다는 것.
국내 유일의 여성 전용 교정시설인 청주여자교도소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교도관 A 씨는 ‘알몸 신검’이라는 말과 함께 재소자들이 물건을 밀반입하는 수법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여성의 경우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 그곳에 현금 흉기 라이터 등을 숨겨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은밀한’ 곳에 물품을 숨겨놓은 경우도 간혹 있다는 것.
A 씨는 콘돔에 마약류의 물건을 담은 후 그것을 자신의 ‘은밀한 부위’에 숨겨 들여오는 여성 재소자를 적발한 적이 있다고 했다. A 씨는 “그런 일이 많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항문이나 ‘그곳’에 담배 한 갑을 숨길 수 있다면 믿어지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담배를 랩으로 ‘똘똘’ 말아 뭉치면 부피가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에 한 갑 정도를 숨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것. 다소 엽기적이긴 하지만 A 교도관이 기억하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대구 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트랜스젠더 재소자가 구치소에 들어왔을 때를 가장 난감했던 ‘알몸 신검의 기억’으로 꼽았다. 그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들은 입소와 함께 ‘특별관리자’로 분류된다고 한다. 주민등록상의 성별과 신체상의 성별이 다르니 신검을 남자 교도관이 해야 할지 여자 교도관이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것. 결국 신체적 성별에 따라 신검을 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 경우는 트랜스젠더가 성전환 수술을 완전히 마치고 들어왔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수원 구치소 교도대에 근무했던 이 씨는 ‘가슴 달린 남자’가 입소했을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교도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특별관리자’로 들어온 트랜스젠더가 ‘가슴’은 여잔데 ‘성기’는 남자였던 것. 교도관들은 이 ‘특이한’ 재소자에게 “(알몸 신검을) 남자에게 받아도 괜찮겠느냐”고 의견을 먼저 물었다고 한다. 이 트랜스젠더의 반응은 한마디로 “싫다”는 것. 그렇다고 여성 교도관이 알몸 신검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교도관들은 이 트랜스젠더를 한참 설득한 끝에 구치소에 있는 한 의사에게 검사를 받게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소위 ‘돈 많고 ‘빽’ 있는’ 정·재계 인사들의 알몸 신검을 기억하는 교도관들도 더러 있었다. 사회적 위치를 떠나 ‘죄인’이 되면 알몸 검사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인 것. 서울 구치소의 한 교도관은 자신의 구치소에 수감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우도 “알몸 검사를 실시했었다”고 다소 믿기 힘든 주장을 했다. 그는 “재벌이 됐던 어쨌든 간에 재소자 간의 차별은 절대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B 구치소에서 근무했다는 한 교도관은 다른 주장을 했다. 그는 유명인사들의 입소시 구치소의 배려를 기억하고 있었다. 정·재계 등의 힘있는 유명인사들이 입소를 하면 알몸 검사 절차를 다른 재소자와는 달리 생략하거나 알몸이 아닌 상태에서 시늉만 냈다는 것. 그는 자신이 근무했을 당시에 입소했던 유명인사로 마약류 위반 혐의의 가수 J 씨와 경기도 한 지역에서 시장을 지내다 뇌물공여죄로 구속됐던 S 씨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J 씨는 알몸 검사를 실시했고 S 시장은 실시하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배려는 다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재소자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알몸 신검은 ‘고통’인 경우가 많다. 지난 2004년 말경 허 아무개 씨(회사원)는 A 구치소에서 몇 개월간 복역을 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알몸 검사는 30명이 한 조를 구성해 신체검사 장소에 들어간 후 제일 앞열 10명이 알몸 검사를 받고 나가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10명이 옷을 벗고 앞으로 나오는 ‘밀어내기’ 형식이었다고 한다.
앞열 10명이 옷을 벗으면 뒤에 20명은 대기하는 동안 원치 않아도 눈앞에 놓인 ‘동성’의 ‘누드’를 보게 되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나 보여주는 사람이나 민망한 광경이다. 게다가 교도관을 뒤로하고 허리를 숙인 채 자신의 ‘엉덩이’를 직접 벌리는 ‘낯 뜨거운’ 장면을 혼자도 아닌 20여 명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연출해야 하니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허 씨가 복역했던 당시는 사실 전국 교정시설의 신체검사장에 이미 ‘개인 칸막이’를 설치해야 했던 시기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3월경부터 전국의 교정시설 신체검사장에 개인적으로 알몸 검사를 실시할 수 있는 칸막이를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 씨가 신검을 받았던 장소는 “칸막이가 없는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는 것. 허 씨 외에 만났던 또 다른 교정시설 경험자들도 2004년 3월 이후에도 복도나 사무실 같은 곳에서 알몸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알몸 신검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수치”로 기억하는 것에는 잘 지켜지지 않은 규정이 한몫했다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