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초등학교의 하교 시간. 아이들을 마중나온 학부모들이 교문에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불안한 요즘 세태의 슬픈 자화상이다. | ||
성범죄자들의 행각을 보면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최근 안산 등지에서 부녀자 24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검거된 30대 남성의 행각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국민들이 더 경악하는 것은 성범죄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성폭행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막가는’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통상적으로 ‘야심한’ 시각에 ‘야한 옷’을 입고 ‘으슥한’ 곳을 다니는 ‘성인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성범죄가 이제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벌건 대낮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최근엔 이 같은 성범죄가 점차 여자 어린이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아동을 유괴하거나 납치하는 목적이 돈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아의 성’을 노린 경우가 많다. 협박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범인과 협상을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아이의 생사를 결정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힘이 약하고 유인하기 쉬운 초등학생 여아가 성범죄자들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성범죄에 정해진 공식은 없다”는 형사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장소 용의자 피해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특징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발생한 성범죄 유형을 분석해보면 더 이상 성범죄의 안전지대는 없다. 대낮 집 앞 놀이터는 물론 학교 앞 문방구, 심지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범행이 일어나고 있다.
성범죄자들도 10대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바닷가에 놀러온 4명의 무고한 젊은이들을 살해한 보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도 70대 노인이었다. 또 혜진·예슬 양 사건이나 제주 양지승 양 사건(2007), 용산 허 아무개 양 사건(2006), 서울 송정동 김윤지 양 사건(2001)처럼 ‘이웃 아저씨’가 공포와 경계 1순위가 되어버렸다(<일요신문> 828호 ‘누가 악마가 되는가’ 참고).
타인의 성을 노리는 가해자들의 수법도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문제는 성범죄 경계령이 내려진 현재도 유사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혜진·예슬 양 사건 이후 온 국민이 성범죄에 대해 민감해있는 지금도 ‘나쁜 사내’들은 가면을 쓴 채 거리를 활보하며 또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납치 등이 수반된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한동안 잠잠했던 보이스피싱 범죄도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작위로 가정집에 전화를 걸어 “아이를 데리고 있으니 돈을 보내라”고 협박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이런 전화를 받은 부모들은 외출한 자녀의 안전을 확인할 경황도 없이 돈을 부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여름 “아들을 납치했다”는 말에 6000만 원을 송금한 현직 법원장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