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륭전자 남녀 조합원들이 구로역 근처 cctv 고공농성에 들어 갔다. 사진제공=기륭전자분회 | ||
민주노총 금속노조 서울지부 산하 기륭전자분회(이하 기륭분회)가 결성된 것은 지난 2005년 7월 15일. 기륭분회 측에 따르면 금속노조 산하에서 분회를 만들게 된 것은 회사 내부에 고용안정 방안 마련을 위한 교섭단체를 꾸리려고 하다가 2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갑작스럽게 해고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조가 결성된 같은 해 8월 15일. 기륭분회는 3개월간 회사 측의 생산라인 일부를 점거했고 “불법파견, 계약해지 철회”를 주장했다. 농성을 하던 조합원 16명은 점거 55일 만인 10월 17일 새벽 경찰에 모두 연행됐고 분회장 및 간부 4명은 구속 기소됐다. 이후 분회원들은 회사 앞에 천막 농성장을 만들었지만 회사 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에 의해 철거됐고 이후 다시 천막을 세우고 철거되기를 반복해 왔다.
그렇게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구로역 북부광장 앞에서 35m CCTV 철탑에 2명씩 올라가 고공시위를 벌여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분회원 대부분이 여성임을 감안하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의 말대로 ‘처절한 시위’였다.
기륭분회 측은 기륭전자가 자신들을 차별해왔다고 주장했다. 남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모두 1년 계약을 기본으로 하면서 여성 근로자들은 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기혼 여성은 6개월, 미혼자나 애를 가질 가능성이 없는 여성 근로자에 대해서는 1년 계약을 맺어왔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기륭전자 측이 휴대폰 문자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한 경우도 많았으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달포 사이에 20~30명의 직원을 자르고 다시 뽑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륭전자 측은 “분회 사람들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륭전자의 A 이사는 “저 사람들은 기륭전자 직원도 아니었는데 ‘정규직을 시켜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어 황당하다”고 말했다.
A 이사는 “현재 분회의 노조원 중 직접 고용자는 계약직 사원 2명에 정규직 사원 2명뿐”이라고 했다. 나머지 200여 명의 직원들은 도급업체에서 고용했던 사람들로 자신들의 회사에 도급직으로 파견돼 일을 했다고 한다. 즉 일은 기륭전자에서 했어도 소속은 도급업체이고 자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008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도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기륭전자는 그간 기륭분회원들로부터 ‘문자해고’ ‘병가 신청자 해고’ 등 약 7건의 해고무효소송이 걸려있었다. 대법원은 지난 4월 “기륭이 해고를 한 것이 아니라 도급업체가 이들 노동자들의 계약을 종료한 것이기 때문에 기륭에서 도급업체의 해고자들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기륭전자는 법적으로 해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 그렇다면 기륭분회원들은 왜 기륭전자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기륭분회 김소연 분회장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우리가 가장 억울해하는 부분”이라며 “법원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호소는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김 분회장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초 시위를 시작한 지 600여 일이 지났을 무렵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기륭분회에서는 이 같은 노동부의 판정을 근거로 회사 측을 고발조치 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했고 이어진 소송에서도 법원이 기륭전자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노동부에 확인결과 당시 기륭전자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행위’로 벌금 500만 원과 함께 ‘개선계획서’를 낼 것을 권고받은 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기륭전자 측도 500만 원의 벌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도급근로자는 자기 직원처럼 일을 부릴 수 없는데 기륭전자는 당시 근로자들을 파견근로자처럼 관리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도급업체에서 파견된 근로자들의 경우 사용자인 회사 측은 이들을 지휘·감독할 권리가 없고 오로지 도급업체를 통해서만 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기륭전자는 직접 감독 하에 직접 고용과 다름없는 형태로 이들을 ‘사용’했고 이 때문에 기륭분회에서는 자신들의 해고와 복직의 책임이 전적으로 기륭전자 측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김 분회장은 “기륭이 직원들의 관리를 모두 관할했다. 우리는 정규직이랑 혼재돼서 일했고 지시도 한꺼번에 받았다”며 “작업복도 생산라인도 근태도 모두 기륭에서 관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륭전자 측 관계자는 당시 노동부 판정에 대해 “2007년도 7월 1일 비정규직법이 생기기 전까지는 도급회사 사람들이 일하는 라인에 우리 회사 정규직 여직원이 소수 섞여있었다”며 “도급회사 직원들이 수시로 안 나오고 바뀌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현장에서 일을 가르쳐줘야 하다 보니 정규직 직원이 간혹 함께 일을 했고 그러다 보니 함께 감독하게 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주장이 이렇게 다르다 보니 사태는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29일 회사 측과 이들 기륭분회는 오랜만에 협상 테이블(55회째)에 마주 앉았다. 고공시위로 이어진 분쟁을 보다 못해 서울시장과 노동부가 나선 중재의 자리였다. 회사 측에서는 지난 3월 새롭게 부임한 배영훈 대표이사가 나섰다. 하지만 이날의 면담도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다. 최종 협상안에 서명만 하면 될 것으로 기대했던 기륭분회원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임직원 24명 중 23명 반대, 1명 찬성으로 협상안이 결렬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회사 측도 분회 측도 모두 지쳐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며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 분회장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면서 도급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는 게 말이 되냐”며 “우리가 유령이냐”고 호소했다. 반면 기륭전자의 A 이사는 “다른 기업도 많은데 왜 기륭이 (비정규직 노조운동의) 대표적인 예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