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27일 밤 한미간 쇠고기수입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시위대가 시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발표는 촛불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촛불 여론과 조중동의 공방전은 더욱 치열해졌고 급기야 지난 27일 새벽 일부 시위대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사옥으로 몰려가 ‘로고’를 망치로 부수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일부에선 그만하면 됐다’는 말도 나오긴 하지만 아직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보수언론과의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됐고, 여기에 보수세력들의 반격이 더해지면서 촛불시위는 이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길로 접어든 양상이다.
조중동에 대한 촛불여론이 악화된 계기는 미국산 쇠고기 개방 발표 이후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조중동의 이중적 보도 행태를 지켜본 어느 한 네티즌이 문제제기를 시작하면서다. 이 네티즌은 노무현 정부 시절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 매우 위험하다고 보도한 조중동이 갑자기 논조를 바꿔 안전하다고 주장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여기에 촛불집회가 도로로 나온 이후 조중동은 이러한 촛불집회가 폭력으로 변질된 것 아니냐며 연일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보도행태를 접한 네티즌들은 조중동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조중동이 보수 수구세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들 신문을 폐간시키지 않는다면 결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네티즌들로부터 폭넓은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한 네티즌이 다음 아고라 등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 당일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 리스트와 광고주의 전화번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을 매일같이 올렸다.
이른바 ‘오늘의 숙제’라는 이름의 이 광고주 리스트는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광고주들은 하루에도 수백 건씩 걸려오는 항의전화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결국 몇몇 기업들은 이러한 네티즌들에게 백기를 들었다. 자사의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발표하고 향후 광고 게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네티즌들은 소위 ‘개념 기업’이라면서 해당 기업의 제품을 많이 구매해줄 것을 약속했다. 반대로 몇몇 기업은 광고 행위는 정당한 기업행위라면서 버티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L사다. 네티즌들은 즉각 L사 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며, L사에서 생산되는 수백 개의 제품 리스트를 작성해 이들 제품을 구매하지 말자며 맞서고 있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광고중단 운동은 조중동에게 실질적인 피해로 나타났다. 광고가 빠지면서 발행 지면이 줄어드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급기야 검찰이 나섰다. 검찰은 네티즌들의 이러한 광고 중단 운동을 협박으로 규정,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단속에 나설 것이라고 지난 20일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은 첨단수사본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 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지난 26일에는 다음 카페 서비스에 개설돼 회원수 4만 3000명에 이르는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 대검 홈피 게시판. | ||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오는 이러한 자수 행렬에 대해 검찰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검찰이 단속하기로 발표 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커뮤니티는 날마다 수천 명의 신규 회원이 늘어나는 등 오히려 네티즌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광고중단 운동이 정당한 소비자 주권 찾기 행위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우선 네티즌들은 자신이 구입한 상품의 일부 비용이 촛불시위를 폄하하고 왜곡보도를 일삼는 보수 언론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며 이러한 광고중단 운동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은 기업의 제품홍보 활동은 해당 제품의 불매운동을 벌일 만한 충분한 사유가 되며, 이는 법이 정한 정당한 소비자 운동 중 하나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역시 성명을 내고 이러한 네티즌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찰이 광고중단과 같은 정당한 소비자 운동에 대해 법적 잣대를 들이대 단속하겠다고 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꼬집은 것이다.
반면 경제 5단체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이러한 광고 협박 행위를 자제해줄 것을 촉구하며, 이는 정당한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주장했다. 특히 신문광고 의존도가 높은 제약업계나 여행업계에서는 신문광고를 하지 못할 경우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일보>는 25일 각 포털에 “해당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광고중단 운동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해당 커뮤니티 폐쇄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포털들은 이러한 요청에 대한 심의를 요구했지만 해당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측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려주지 못하며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한편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들 역시 이러한 네티즌들의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의 피해를 입고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경향신문> <한겨레>는 최근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광고를 싣는 등 촛불시위의 수혜 언론으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촛불정국 이후 매출에 있어 조중동 못지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특정 언론뿐만 아니라 신문업계 전체에 광고 집행을 하지 않는 신문광고 시장의 생리 때문이다. 특히 조중동에 비해 취약한 <경향신문> <한겨레>의 경우 광고 감소가 곧바로 회사의 막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전직 기자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아이로니컬하게도 조중동의 광고주를 압박한 결과가 결국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비빌 언덕조차 없애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