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부업체 한 관계자는 1000명의 개인정보를 사서 1명만 성공해도 훨씬 남는 장사라고 밝혔다. 사진은 SBS 드라마 <쩐의 전쟁>의 한 장면. | ||
최근 대부업계를 중심으로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제2금융권을 비롯한 대부업체들이 자사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서로 교환하는가 하면 돈을 받고 타 업체에 판매하는 불법행위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 대부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대부업계를 이용하는 인구가 총 인구의 7% 정도’라는 금감원의 발표를 근거로 “이들 7%의 개인정보는 거의 100% 대부업계에 공유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들에게 유통되고 있는 개인정보들 중에는 군사기밀에 속하는 것들까지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자료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부업계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과정과 그 실상을 낱낱이 파헤쳐봤다.
말만 많고 구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개인정보 불법 유통 실태. <일요신문>은 그 실상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직접 특정 업계에 유통되고 있는 개인정보 자료 입수에 나섰다. 제2금융업체에서 영업사원으로 잔뼈가 굵은 K 씨를 며칠간 설득한 끝에 그에게서 업계에 돌고 있다는 개인정보 자료 중 일부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K 씨에게 전해 받은 수백 장의 A4 용지에는 1만여 건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었는데 여기에는 고객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폰번호, 집과 직장 주소, 직장 전화번호, 대출현황 등 상세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총 5만여 건”이라며 “이 정보들은 영업사원들이 대출을 안내하는 문자를 보내거나 텔레마케터들이 대출전화를 걸 때 사용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엔 번호조합 등을 통해 무작위로 전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 이러한 개인정보 파일을 보고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K 씨는 이 자료들의 출처로 A 사, B 사, C 사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을 만한 제2금융 및 대부업체들을 거론했다. 그곳에서 유출된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자신이 몇 달 동안 모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얼마 전 금감원에서 대부업체 이용인구가 전체인구의 7%가량 된다고 발표했는데 그 사람들의 개인정보는 이 업계에서 100% 공유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적어도 300만 명의 개인정보가 국내 대부업계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치였지만 딱 한번 대부업체에 대출 문의를 한 사람들까지 세세하게 분류돼 있는 그의 자료를 보면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K 씨에 따르면 대부업계에서 개인정보는 기업 내부에서 고객정보를 빼서 판매하는 ‘공급책’쭭이를 사가는 ‘중간책’쭭중간책이 사온 정보를 다시 사는 ‘영업사원’의 순서로 불법 유통되고 있었다. 개인정보들의 거래가격은 보통 건당 100원에서 200원 정도. 개인정보가 상세하고 희귀할수록 거래가는 당연히 더 높다고 했다. 중간책은 건당 50원에서 100원 정도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었다.
공급책들은 고객정보를 빼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K 씨는 자신의 전 직장이었던 A 사 직원들의 경우 장기대출자나 체납 고객들을 모아놓은 독촉열람표를 만들어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독촉 전화를 하라고 돌리는데 이것을 폐기하지 않고 모아뒀다가 외부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때로는 고객 명단을 열람만 할 수 있는 텔레마케터들이 일을 하면서 봤던 우량고객 정보를 적어뒀다가 외부에 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흔한 방법은 회사 내부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통째로 복사해서 빼돌리는 것이라고 한다. K 씨의 회사에는 얼마전 DB를 빼내려다 발각돼 그대로 잠적해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K 씨는 “업계에서 도는 자료는 대부분 내부 직원들에 의해 유출된 것들이어서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며 “내부에 선이 닿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고객정보를 쉽게 빼낼 수 있다. 그만큼 고객정보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유통되고 있는 개인정보 중에는 실로 놀랄 만한 것들도 있다. 군사기밀이라 할 만한 직업군인들의 개인정보도 이런 식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
K 씨는 “몇 달 전 다른 팀의 DB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며 “거기엔 직업군인들의 정보가 너무도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군인의 이름, 주민번호, 연락처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직책, 소속부대 심지어 주특기까지 적혀 있었다는 게 K 씨의 증언이다. 가히 군사기밀 급의 자료가 엉뚱한 곳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 회사에서 일하는 또 다른 사원 J 씨도 “그 자료는 OO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라며 직업군인에 대한 개인정보가 있음을 확인해줬다. J 씨에 따르면 이 자료가 회사 내부에 들어온 것은 지난 1월 말경. OO팀의 팀원들이 이 DB 중 일부를 J 씨에게 보여주고는 “어렵게 구한 자료다. 1만 개 정도 된다”며 “OO 씨가 국방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로비를 통해 얻어낸 정보다”라고 귀띔해줬다고 한다. 회사 내부에서도 쉬쉬하는 자료인 데다 다른 팀의 자료라 밖으로 유출하기는 어렵다고 말해 그 진위 여부를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그런 정보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대부업체 영업사원들이 이런 위험한 개인정보까지도 굳이 입수하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개인정보를 사서 돈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 전화를 걸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어 그만큼 남는 장사라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희귀한 정보일수록 다른 대부업체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은 ‘원석’일 가능성이 높아 성공확률이 더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대출현황까지 상세하게 나온 자료를 입수할 경우엔 그 사람이 내고 있는 연이율보다 싸게 해준다고 유혹하면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J 씨는 “1000명의 개인정보를 사서 1명만 성공해도 그 비용은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업계에서는 개인정보의 불법 유통과 거래가 쉴 새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경찰은 이 같은 개인정보 불법유통에 대해 “개인적으로 암암리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고발이나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단속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현 시점에서는 회사에서 고객 정보 관리를 엄격하게 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