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티즌들이 주도한 촛불문화제에서는 보수 언론에 대한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사진은 촛불문화제, 삼양산성,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페이지 사진을 합성한 것. | ||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삼양라면’이다. 네티즌들은 삼양라면을 ‘개념 있는 기업의 상품’이라고 점찍어 조직적인 구매에 나서는 반면 경쟁업체인 ‘농심라면’은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또 이와 같은 일은 네이버와 다음,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에서도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촛불문화제를 이끌고 있는 네티즌들이 우호적인 기업과 적대적인 기업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벌이는 소비자 운동은 업계의 판도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또 촛불이 만들어낸 역전 드라마는 과연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7월 5일 서울시청 앞 서울 광장에는 ‘삼양산성’이 세워졌다. 컨테이너로 만든 ‘명박산성’과 모래주머니로 쌓은 ‘국민토성’에 이은 또 하나의 산성이었다. 이 ‘라면산성’을 쌓은 이들은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었다. 이미 촛불문화제를 주도하는 네티즌들은 ‘삼양라면 구매 운동’을 벌이고 있는 터였다.
네티즌들이 삼양라면을 사들이기 시작한 이유는 “삼양식품이 <조선일보>에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최근 삼양라면에서 너트가 발견된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대표적인 보수 언론인 <조선일보>에 의해 크게 보도되었다. 네티즌들은 “삼양라면이 87년 ‘우지파동’을 겪었을 때 역시 보수 언론에 적극적으로 보도되었고 결국 삼양라면은 1000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을 거치며 업계 선두 자리를 경쟁업체인 농심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쟁업체이자 라면 업계의 선두 기업인 농심은 네티즌들의 공격 대상으로 찍혔다. 네티즌들의 주장은 “삼양라면에서 너트가 나왔던 비슷한 시기에 농심라면에서는 바퀴벌레와 나방이 나왔는데도 <조선일보>는 보도하지 않았으며 농심은 <조선일보>에 광고를 싣는 것으로 화답했다”는 것. 이런 연유로 농심은 네티즌들의 ‘보수언론 광고 기업 공격 대상 1호’로 찍혔다.
농심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들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농심 측은 “우지파동이 있기 전부터 농심은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조선일보> 광고는 대행사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농심측의 주장은 네티즌들에게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양식품의 주가는 한때 급상승했다. 1만 4500원이었던 주가가 4만 1450원까지 올랐었다. 특별한 매출 상승이나 다른 호재가 없었는데도 이렇게 급상승한 삼양식품은 증권가에서 한동안 “알 수 없는 이유로 상승한 종목”으로 인식됐다.
촛불문화제 네티즌들의 ‘호불호가 명확한’ 소비자운동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음의 토론광장 ‘아고라’는 촛불문화제의 성지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반해 포털사이트 업계 선두인 네이버는 네티즌들에게 ‘보수적인 사이트’로 치부되고 있다.
네티즌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음은 뉴스 부문 페이지뷰에서 네이버를 추월하기도 했다. 촛불문화제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터라 네티즌들 활약이 큰 영향력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음은 보수 언론의 역공을 맞기도 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3사가 다음에 뉴스 공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 다음의 아고라에서 네티즌들이 연일 보수 언론을 비난하는 글들을 올렸을 뿐 아니라 해당 언론에 광고하는 기업들에게도 항의하는 운동을 벌인 탓이다. 네티즌들의 광고주 항의 운동에 대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었던 보수 언론들은 “다음이 네티즌들의 행동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뉴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러한 뉴스 중단에 대해 다음 측은 아직까지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증권가에서조차 “조·중·동이 다음의 전체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4%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오히려 네티즌들은 보수 언론의 뉴스 공급 중단에 대해 “조·중·동의 뉴스를 보지 않아도 돼 환영한다”는 입장. 또 “다음에 뉴스를 공급하지 않으면 보수언론의 사이트 방문자 수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지식검색 이탈 운동’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네티즌들은 “네이버가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검색엔진 때문에 급성장했다”며 “네이버 지식인에서 자신의 글을 삭제하고 다음의 신지식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네티즌들의 공세에 네이버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네이버 측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네이버 초기화면에 노출된 뉴스박스 영역을 개방해 다양한 언론사가 편집한 뉴스박스를 직접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네이버의 변화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네이버가 뉴스 편집을 바꿔 네티즌들 달래기에 나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도 보수적 언론과 진보적 언론을 향한 네티즌들의 공세와 지지는 여전하다.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진보적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정기구독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반면 보수 언론에 대해서는 해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커뮤니티 회원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구독 해지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의논하기도 한다.
이러한 네티즌들의 지원에 힘입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정기구독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경향신문의 구독률 상승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월간 <신문과 방송> 7월호에 따르면 <경향신문>의 구독 점유율이 2006년의 2.8%에서 2008년에는 3%가 오른 5.8%로 조사되었다.
네티즌들의 진보 언론 지원 운동이 신문 업계 전체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보수 언론에 광고한 기업에 대한 항의전화 운동이 전체 신문 업계의 광고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항의로 사과문을 내고 보수 언론에 광고를 싣지 않는 기업들이 진보언론에 광고를 싣는 것이 아니라 촛불 민심과는 거리가 먼 경제신문과 케이블방송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문의 광고 시장이 전체적으로 침체되는 양상처럼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호불호 기업 운동’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로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촛불 민심의 지지를 받았던 삼양식품의 주가도 최근 들어서는 많이 하락해 거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기도 하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