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한전으로부터 예비전력을 훔쳐썼다며 310억 원의 위약금 청구 소송을 당했다. 작은 사진은 전력거래소 내부 모습. 일요신문DB
한전이 기업들을 전기 도둑으로 규정해 소송전을 벌이는 까닭은 ‘예비전력’에 있었다. 예비전력은 기업이 공장을 운용하며 천재지변이나 사고 발생으로 정전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 놓는 전력이다. 한전은 소송 중인 기업들이 애초 계약과 달리 예비전력을 운용해 위약금(전기료)을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이 요구하는 위약금의 액수가 가장 큰 곳은 삼성그룹이다. 한전이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요구하는 소송 금액은 521억 원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가 두 건의 청구소송으로 401억 원을 요구받아 가장 비중이 크다.
첫 번째 건은 지난 2008년 10월 삼성전자가 화성 제1, 2공장을 연계하는 선로를 구축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의 화성 제1공장의 경우 예비선로가 1회선밖에 없기에 정전에 대비해 화성 1, 2공장의 전력을 상호 융통해 예비전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연계선로를 구축했다. 한전은 우선 1, 2공장을 연계하는 선로를 구축한 것 자체가 전기사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부정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전에 따르면 전력공급능력을 예비전력까지 감안해 유지하기 위해서는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이때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한전은 예비전력이 전기 공급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정식 절차를 통해 공급받아야하는데 정식 절차 없이 예비전력 체계를 구축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전은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이 상의 없이 임의로 연계선로를 구축해 예비전력을 공급받은 것은 전기를 훔쳐 쓴 도전(盜電)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입장”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기흥공장. 최준필 기자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정전 시 반도체공장 가동중단으로 발생하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당사가 모든 비용을 들여 예비선로를 구축한 것으로, 한전에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고, 또 실제 전력을 사용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다시 한전은 “(예비전력은 전력이 흐르지 않더라도) 예비전력을 적정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상시전력만 공급할 때에 비해 공급능력을 더 갖춰야하고 이를 위해 들어가는 추가 투자비용은 전기료(위약금)로 회수해야 마땅하다”고 재반박했다.
삼성은 위약금 납부를 거부했다. 이에 한전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2013년 7월 31일 기준으로 총 310억 원의 위약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3년 12월 11일 선고된 1심은 한전의 판정승.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한전이 청구한 위약금 중 117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삼성전자는 이 금액을 가지급한 후 항소했다. 이에 한전도 역시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두 번째 ‘도전’ 소송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발생했다. 지난 2010년 2월 1일 삼성전자와 한전은 기흥 1공장은 농서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고, 기흥 2공장은 신수원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1공장과 2공장 간 선로에 루프(Loop·고리 모양) 선로를 설치했다. 한전은 삼성전자의 루프 선로가 기흥 1, 2공장의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만든 예비전력 체계라고 판단했다. 한전은 삼성전자에 기존의 전기사용계약을 예비전력 기본요금을 추가해 변경하자고 삼성전자에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이를 거부하면서 한전이 청구한 예비전력 기본요금 채무 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한전은 전기사용계약 변경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위약에 해당한다며 삼성전자에 총 91억 원의 위약금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하며 맞섰다. 삼성 측은 “약관이 불명확하게 규정돼 있으며 한전의 요금청구 또한 일관성이 없어, 법원의 판단을 받기 위해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며 “(삼성 측 소송에) 한전이 과다한 위약금을 청구하는 반소를 한 것으로 재판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 상급법원 최종결정을 받을 예정이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전과 ‘도전’ 소송 중인 회사에는 금호석유화학도 있다. 한전은 전남 여수의 금호석유화학이 제1에너지와 제2에너지 사이에 루프 선로를 무단으로 연결해 제2에너지의 소내 소비전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한전은 금호석유화학이 전기사용계약을 위반했다며 51억여 원의 위약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제1에너지와 제2에너지가 동일명의이고 고객설비 내에서의 전력이동에 불과해 위약에 해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013년 11월 18일 1심 결과 재판부는 전기사용계약상 다소 흠이 있다고 하더라도 제2에너지에서 사용한 전력의 용도는 산업용에 해당한다며 한전의 청구를 기각했다. 한전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해 판결이 나오면 그대로 따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전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금 소송에 관해 언급하기는 힘들다”며 “한전의 공식입장은 소송이 끝나고 판결 결과가 나오면 그때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