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지난 5월 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삼성그룹의 상속·증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후 삼성SDS,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 상장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여러 분석이 난무했지만, 최대 난제는 세금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지분 등을 상속·증여 받는 과정에서 수조 원의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나가던 삼성전자가 최근 급격한 실적부진을 겪으면서 세금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게 됐다.
상장사 주식을 증여할 때 상속·증여세법에서는 평가기준일 이전과 이후 각 2개월 종가의 평균으로 시가를 평가한다. 이 회장 발병 직전 2개월간 삼성전자 주가평균은 134만 1000원이다. 그런데 2분기 실적에 이어 3분기 실적도 부진하면서 14일 기준 최근 2개월 평균은 119만 4000원이다. 11%가량 하락했다. 이만큼 상속·증여세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는 160조 원의 배당가능이익, 즉 이익잉여금을 쌓아 놓고도 실적 악화 이후 어떠한 주주 관련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며 “삼성전자는 오너일가 지분율이 낮아 배당을 해도 외부 주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게다가 지금 이 회장이 배당을 많이 받아도 결국 상속·증여세 대상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충분히 확보한 후에야 적극적인 배당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상속·증여뿐 아니라, 지배구조 재편에도 주가 하락은 기회가 된다. 삼성에게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라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금산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취득가로 평가돼 보험업법에서 정한 투자한도를 편법으로 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 지분이 워낙 규모가 커 오너 일가는 물론 그룹 내부에서도 이를 마땅히 받을 곳이 없다. 하지만 최근 주가 하락으로 이 지분의 가치도 15조 원대에서 11조 원대로 줄었다. 덩치가 줄어든 만큼 오너 일가 또는 특수관계인으로의 지분 이동도 상대적으로 용이해졌다.
현대차그룹은 주가 하락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3사는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무려 10조 5500억 원에 인수한 덕분(?)에 주가가 급락했다. 이에 따라 한때 6조 원을 넘었던 사실상 지주회사 현대모비스의 1대주주 지분가치는 최근 4조 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한전부지 인수에 참여하지 않은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견조함을 유지,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3조 5000억 원을 넘고 있다. 정 부회장의 이노션 지분매각 대금 3000억 원, 현대위아 지분 1.95%의 가치 1000억 원 등을 감안하면 당장이라도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1대주주 자리와 맞바꿀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유럽의 경기 부진, 중국의 경제 불안 등 여러 요인 탓에 증시 전망이 어둡다. ‘코스피 3000’을 외치던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내년 우리 기업의 실적 전망도 올해보다 밝지 않다. 활발한 증여·상속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한 증시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들도 상속·증여 시기가 도래한 기업에 접근할 때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상속·증여 단계에서는 경영이 안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다, 지분경쟁이 아닌 대부분의 경우에 주가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오히려 상속·증여가 마무리된 후에는 새로운 경영자의 경영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정책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