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는 구리 9단과 한국 김형우 3단 간에 치러진 8강전 중반 모습. 김 3단은 이번 LG배에서 다크호스였다. 1988년생으로 김원 7단과 양재호 9단의 지도를 받고 2005년에 입단했다.
김 3단이 백. 백1로 잡고 흑2를 허용한 것은 대담한 바꿔치기. 한국 신예의 기백을 보여주고 있다. 계산도 있었다. 선수를 잡아 하변에서 백3으로 움직이겠다는 것. 상당한 노림수다.
<2도>가 이어진 실전진행. 흑은 1로 이걸 따낼 수밖에 없다. 백4가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쪽에서 응수하다간 백이 1에 이어 아래 흑 넉 점이 떨어진다. 백의 노림수가 멋지게 통했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흑9라는 멋지고도 통렬한 반격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3도> 백1에는 흑2부터 10까지 크고 깨끗하게 완생한 모습. 자체로는 백도 세력이 훤해져 불만이 없는 결과였으나 선수를 잡은 흑이 12로 날아오며 백세를 지우게 돼서는 흑의 페이스가 됐다는 것이 검토실의 중론이었다. 169수 만에 흑이 불계승을 거뒀다. 그렇다면 <1도>의 백3은 별 게 없는 수였을까. 그건 아니다. 하변에 노림이 있었던 것은 맞다. 김 3단의 착점이 조금 빗나갔던 것.
<4도> 백1이 강력한 수였다. 이때도 어쨌든 흑은 2로 따내야 하는데, 그러면 백3으로 모양 좋게 솟구쳐 오를 수 있다. 실전과는 큰 차이.
<5도>는 이창호 9단과 구리 9단의 준결승 장면. 이 9단이 흑이다. 지금까지는 흑이 선착의 효를 잘 살려오고 있다는 것이 검토실의 얘기였는데, 상변 백1로 이은 다음 흑이 좌변으로 손을 돌려 2로 내려선 게 흐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흑2는 일견 이창호류 혹은 이창호다운 수라 할 수 있다. 좌변 위-아래 흑 대마의 연결 통로를 만들면서 그 가운데 백 대마를 쳐다보는 그야말로 은근한 수. 냉정 침착이 뚝뚝 흐르고 있다. 좀 발이 느리고 한가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른바 ‘이창호의 수’여서 검토실에서도 즉각 뭐라고 논평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후에 이건 역시 문제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상귀 백5가 필쟁의 곳. 백5가 놓이면서 실리의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 따라서 흑2로는 일단 우상귀 A로 가야 했다는 것. 흐름이 좋다고는 하지만 크게 앞선 것은 아니므로 여기서는 한 번 버텨야 했다는 것이다.
<6도>는 <5도>에서 몇 수가 더 진행된 후의 장면. 우상귀 백1, 이것도 백의 차지가 되었다. 흑이 집으로 점점 불안해지고 있는데….
흑2, 4에서 6이 검토실을 침묵케 만들었다. 흑6도 물론 두텁고 좋은 자리다. 그러나 검토실은 “이런 수를 두어서도 이길 수만 있다면…” 하면서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흑6은 <5도>의 흑2와 비슷한 성격이 있었던 것.
백7, 그리고 이어진 11과 13이 “구리 9단의 훌륭한 대국관을 말해 준다”는 평을 받았다. 특별히 표가 나거나 눈에 띄거나 하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유연하게 대세를 리드하는 솜씨. 서늘하게 바둑판을 감싸도는 ‘고원의 바람’이 느껴진다.
흑14로 공배를 이어가야 하는 게 쓰라리다. 흑6으로는 A로 두 점을 살리고 싶었다는 것. 이건 백 대마에 대한 간접 위협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게 앞서 두어 놓았던 좌변의 흑▲, 바로 <5도> 흑2의 체면을 뒤늦게나마 살리는 길이었다는 것.
이후 백은 넉넉히 앞서가기 시작했는데 끝내기에서 조금 미흡했다. 아니, 구리 9단이 미흡했다기보다 이 9단이 자신의 능기인 정교한 끝내기로 무섭게 따라붙었으나 분하게도 1집 반의 차이까지 좁히는 것에 그쳤다.
중국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꾸준히 변함없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컨대 <7도>는 요즘 유행하는 서반의 패턴 가운데 하나. 백1로는 최근까지도 우변을 A 정도에서 갈라치는 것이 주류였으나 요즘은 이렇게 직접 걸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에 대한 흑2의 두칸 낮은 협공과 이후의 진행도 최신 유행 수법. 특히 흑2는 한국 기사들이 시도하기 시작된 것인데, 중국 기사들이 더 많이 연구해 여러 가지 버전을 만들어 내고 거꾸로 한국 기사들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 공부하는 자가 무서운 법.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공부하는 자는 더 무서운 법.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