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릭터 육성 게임 ‘리니지2’와 게임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해주는 장치인 오토 프로그램(왼쪽). | ||
이는 온라인게임의 특성과 관련이 깊다. 보통 온라인게임은 캐릭터를 육성한다는 개념을 도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다소 지루한 반복 사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유저들은 이를 피하고 남들보다 더욱 빠르게 강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러한 ‘오토’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 거래되는 화폐가 실제 현금으로 바꿔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여러 대의 컴퓨터를 가지고 오토를 통해 전문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얌체 상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토 때문에 게임 내 경제 시스템에서 비정상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 게임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때문에 최근 게임사들은 ‘오토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방지책 마련에 발 벗고 나섰다.
오토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다양한 게임에서 오토가 존재했고 일부 유저들은 이를 이용해 게임을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오토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오토가 지나치게 지능화돼 정상적인 게임 서비스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등장한 오토들을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사람이 없어도 자동으로 사냥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알아서 아이템을 줍고 스스로 회복을 하는 행동까지 마치 사람이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 뛰어난 인공지능을 보여준다. 심지어 다른 유저가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는 알아서 공격하지 않거나 오토를 감시하는 게임 내 운영자가 등장하면 접속한 서버의 채널을 바꾸기도 할 정도다.
과거의 오토는 소프트웨어 방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게임사들이 업데이트를 통해 이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USB 연결을 통해 물리적으로 게임 프로그램에 명령을 입력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컴퓨터가 일반 마우스나 키보드에서 오는 신호와 오토에서 오는 신호를 구분해내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토는 인터넷 등지에서 5만~6만 원 정도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기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유저가 한 번 켜놓기만 해도 알아서 수 시간 동안 게임을 자동으로 플레이해주는 점에서는 거의 같다.
오토를 애용한다고 밝힌 이진호 씨(29)는 “주로 잠 잘 때와 회사에 출근할 때 켜놓는 편”이라며 “게임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고 지루한 반복 전투를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게임사의 입장에서 보면 오토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오토를 사용한 유저는 그렇지 않은 유저에 비해 캐릭터 성장 속도가 비약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일반 유저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줘 결국 유저 이탈을 초래한다는 것이 게임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실제로 2006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모 게임의 경우 이러한 오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동시접속 유저 수가 절반 이하로 급감하기도 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작업장’들에게 있다. 이들은 폐업한 PC방이나 오피스텔 등에 컴퓨터를 대량으로 설치해놓고 소수의 인원이 오토를 돌려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나마 양반이다. 게임사들이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운영되는 작업장은 도저히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한다.
중국에는 한 성에만 수백 개의 대형 작업장이 존재할 정도로 오토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작업장은 오토 대신에 저렴한 인건비를 이용, 사람을 고용해 게임을 플레이시키는 방식으로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모으기도 한다.
이렇게 벌어들인 아이템과 게임 내 화폐는 한국에 있는 중개 사이트를 통해 한국 유저들에게 판매되고 있어 적지 않은 외화가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에는 중국에서 작업장을 운영한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는데, 무려 420억 원가량의 외화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이러한 게임머니는 중국을 거쳐 일부 검은 돈의 자금 세탁 창구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 몇몇 게임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게임 캐릭터 대행 육성 서비스는 대부분 이러한 중국인들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게임사들은 오토를 사용하는 유저가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도록 사용자 계정을 막아버리거나 심한 경우에는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있다.
최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아이온’을 서비스하고 있는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시중에 판매하는 오토 제조 및 유통 업체 8곳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다. 오토 판매자들은 관련 법규가 없어 결코 불법이 아니라며 유저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판례가 있기 때문에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 오토를 유포하면 1년 이하 징역 및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관 기관도 발벗고 나섰다. 한국 게임산업협회(회장 권준모)와 한국 인터넷기업 협회(회장 허진호)는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하에 오토 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정부도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오토 프로그램 배포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 신설을 추진 중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도 제재받을 수 있다. 회원 가입시 유저의 동의를 받는 약관에는 오토 사용자에 대해 게임사가 계정 정지와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토 사용이 발각되면 수개월 동안 해오던 게임 캐릭터가 삭제돼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