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노숙소녀’ 김 아무개 양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10대 청소년들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사진출처=박준영 변호사), 경찰이 공개한 김 양 옷가지, 사망 당시 심한 구타를 당한 채 버려진 모습.
2007년 5월 14일 새벽 5시 30분. 경기도 수원시 매교동 한 고등학교 건물 앞에서 신원 미상의 15세 소녀 김 아무개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양의 머리와 얼굴에는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듯 수많은 멍이 들어 있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 김 양의 사인은 뇌출혈의 일종인 ‘외상성 경막하 출혈’. 여러 정황을 따져봤을 때 김 양은 집단 구타를 당하고 사망 후 그대로 방치됐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만 하루 만에 수원역 대합실에서 지내던 20대 노숙인 정 아무개 씨와 강 아무개 씨를 긴급 체포했다. 정 씨와 강 씨가 5월 14일 새벽 2시쯤, 수원역 2층 대합실 밖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김 양을 인근 고등학교로 끌고 가 얼굴과 온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 경찰은 이 두 노숙인이 며칠 전 “우리 돈을 훔쳐간다”는 이유로 노숙인 여성 A 씨를 마구 때린 사실을 포착했다. 처음에 범행을 부인하던 정 씨는 “술에 취해 김 양을 A 씨로 순간 착각했다. 아는 동생 돈 2만 원을 훔쳤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고 때렸는데 김 양이 뒤로 물러서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쳤다”라고 범행을 시인했다.
2007년 8월 수원지법은 주범인 정 씨에게 징역 7년, 강 씨에게는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정 씨는 “형사의 폭행과 강압수사에 의해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거짓으로 진술했고, 검찰에서도 강제적인 수사가 이뤄졌다. 실제로 사건 당일 피해자를 때린 적이 없고 범행 장소인 고등학교에도 간 적이 없다”며 갑자기 범행을 전면 부인, 항소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여전히 정 씨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우발적인 상해치사 범행이 발생했고 살인의 결과도 당초 의도했던 것은 아닌 점에서 1심 형량은 지나치게 무겁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상고를 하지 않은 정 씨는 그대로 감옥신세를 지게 됐고, 공범인 강 씨는 벌금을 미납해 끝내 노역형을 택해야했다.
그런데 2008년 1월, 검찰이 “진범을 추가로 발견했다”며 10대 가출청소년 5명을 추가로 기소해 사건은 반전이 일어났다. 검찰은 “가출청소년이 정 씨와 강 씨와 공모해 소녀를 폭행했다는 제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전개했다”라고 대대적으로 밝혔다. 공범으로 지목된 가출청소년들은 차디찬 구치소 신세를 진 채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참 암울해요. 쌤은 내가 정말 그랬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무리 가출해서 양아치처럼 살았지만 쌤만은 저희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안 했다고 난리쳐도 검사가 몰아붙여서, 난동 피우면 없던 죄도 생길까봐, 막장이다 생각하고 인정했어요.”
가출청소년들이 수원구치소에 수감된 지 한 달째.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복지센터)에 편지 한 장이 날아들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가출청소년 중 한 명인 조 아무개 양이 자신을 돌봐준 선생님에게 억울함을 빼곡하게 적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를 꼼꼼히 읽어본 복지센터 관계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복지센터 임낙선 상담지원팀장은 “가출한 아이들이 가끔 크고 작은 절도를 저질렀어도 이처럼 큰 살인사건에 연루됐다는 검찰 발표에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편지 내용을 보니 ‘이거 뭔가 있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재빨리 아이들 면회 신청부터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막상 면회를 해보니 아이들의 표정과 말은 제각각이었다.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아이들부터 “왜 자꾸 물어보느냐”라며 짜증을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결같이 뒤에 있는 교도관의 눈치를 자꾸만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잘못 얘기를 한다면 더 큰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아이들로부터 느껴졌다는 게 복지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아이들의 첫 공판은 4월. 시간이 없었다. 복지센터 관계자들은 변호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신참 국선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박 변호사는 “처음에 복지센터 관계자들이 찾아와서 아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사실 다 믿지는 못했다. 검찰이 어떻게 무고한 청소년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까. 2년차 신참 변호사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라고 전했다.
노숙소녀 이름 찾기 운동에 동참한 개그맨 서경석. 출처=온라인커뮤니티
가출청소년들이 법정에 선 그 날. 애초 주범으로 지목돼 징역형을 살던 정 씨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증인석에 선 정 씨는 “나도 아이들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당시 고등학교가 아닌 수원역에 있었다”라고 또박또박 증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 씨의 증언도 아이들의 억울함도 인정하지 않았다. 2008년 7월 수원지법은 “피고인들이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점에 비춰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며 가출청소년들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했다. 막막한 표정을 하는 복지센터 교사들 앞에서 아이들은 모두 울음을 터트렸다.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복지센터 관계자들과 박 변호사는 다시 머리를 맞댔다. 사건현장인 고등학교에 직접 찾아가 경찰과 검찰이 지목한 피의자들의 동선을 살폈다. 그런데 수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경찰 조서에는 “범인들이 학교 담을 넘었다”고 표기돼 있었지만, 실상 학교 담은 성인 남성이 넘기도 힘든 높이인 ‘2m’가 훌쩍 넘었다. 수원역과 고등학교 정문까지 설치된 곳곳에 CCTV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찍히지 않았다.
결정적인 것은 박 변호사가 입수한 검찰의 ‘진술녹화 영상’이었다. 여기에는 ‘편집’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진술 모습이 그대로 녹화돼 있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는 아이들이 막힘없이, 일관되게 범행을 인정하는 내용이었지만 영상에 나온 아이들의 진술은 곳곳에서 엇갈렸다. 사건 현장을 잘 모르고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수사관은 “화단 옆에서 시체가 발견됐는데?” 등의 힌트를 줬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리면 조서를 작성하는 식이었다. 영상을 본 순간 “이거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겠다”는 강한 느낌이 박 변호사의 머릿속을 스쳤다.
2심 재판에서 박 변호사의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2009년 1월 추가적인 증거자료를 검토한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들이 검찰에서 한 자백진술은 그 경위에 비춰 볼 때 신빙성에 의심이 든다”며 가출청소년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즉시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2010년 7월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3년간의 기나긴 싸움이 끝을 맺는 순간이었다.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애초 범인으로 지목됐던 강 씨와 정 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박 변호사는 또 발로 뛰었다. 결국 강 씨는 2012년 재심이 개시돼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정 씨 역시 2013년 10월 수원지법에서 재심 끝에 결국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김 양의 사망시각이 피의자의 자백과 일치하지 않는 점, 피의자들이 범행현장 CCTV에 잡히지 않은 점 등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고 최종 판단했다. 결국 김 양 살인사건의 ‘진범’은 경찰과 검찰이 지목한 그 누구도 아니었다.
최종 무죄가 결정 났지만 피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모두 억울한 옥살이를 한 터였다. 이에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월 “가출청소년들이 이미 무죄판결을 확정 받은 상해치사 혐의로 231~372일간 구금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2억 1900만 원’의 형사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26일 서울중앙지법은 가출청소년들의 허위 자백을 근거로 기소한 담당 검사의 직무상 과실을 인정해 “국가가 총 1억 2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해 7월부터 국가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검사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입었고 그 책임을 국가가 진다는 취지의 판결이다”라고 전했다.
대략 8년간 이어진 법정 싸움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2년차 신참 변호사는 산전수전 다 겪은 국선 변호사가 됐다. 지난 몇 년간 복지센터를 퇴근한 후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하던 복지센터 관계자는 “국가배상 판결로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며 개운하다는 입장이다. 어느덧 20대가 된 가출 청소년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기도 했다. 가출 청소년들은 배상금 중 일부를 안산 단원고 학생을 위해서 기부를 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과제는 남았다. 복지센터 임낙선 상담지원팀장은 “이번 경우처럼 큰 것은 아니지만 가출청소년들을 만나다보면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비행경험이 있기 때문에 죄를 덮어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라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국선변호사로서 좌충우돌하며 여러 한계를 느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국선 변호사로서 열의도 필요하지만 국선변호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국선 변호인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한편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원남부경찰서 염 아무개 형사는 이후 다른 서로 옮겨 현직에 있다. 가출청소년들을 기소했던 수원지검 박 아무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자리를 옮겨 현재는 한 법무법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이들에게 당시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진범은 어디 있나 “친구들이 폭행” 진술 있었다 김 양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범인은 사건 직후 잡혔으나 끝내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였음이 밝혀짐에 따라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중 2011년 11월 사건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이 나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양과 친분이 있다던 A 양(여·20)은 “붙잡힌 사람들은 범인이 아니다. 친구들이 그 애를 때려서 기절시키고 학교 근처에 두고 왔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사실 확인에 들어갔지만, 수사는 좀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당시에는 주범으로 지목됐던 정 씨가 이미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경찰에서 그다지 수사 의지가 있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수사는 현재까지도 답보 상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수원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시 사건을 담당한 형사들이 모두 다른 서로 옮겼다. 수사 담당자도 없고 사실상 수사가 진행되는 부분도 없다”라고 전했다. 진범이 붙잡히지 않은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