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다. 삼성전자의 이사선임 등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삼성생명을 직접 지배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도 삼성생명 지분을 갖고 있지만 2대주주인 데다, 간접적인 지배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부회장으로서는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을 물려받기 전, 그 자격을 금융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당장 이 회장 지분을 물려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수관계인으로서 의결권을 대리행사할 때도 자격 논란을 피할 수 있다.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이 부회장이 직접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물려받지 않고 제일모직이 이를 넘겨받는다 해도 자격심사는 필요하다. 어차피 제일모직을 지배하는 게 이 부회장인 만큼 실질적 지배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삼성이 금융과 비금융지주로 양분된다고 해도 대주주 적격심사는 필요하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후계자임은 분명하지만, 실질적으로 삼성전자를 움직이는 힘의 근원은 삼성생명”이라며 “이 부회장이 이제 실력으로도 그룹 경영권을 틀어잡는 작업을 시작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언론에서 사용하는 프로필 사진을 교체했다. 10년여 전 사진이라 너무 젊게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별 의미 없는 조치일 수 있지만, 삼성그룹 대표자로서 좀 더 연륜 있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반영됐을 수도 있다.
삼성 주변에서는 당장 올 연말 인사에서 이 부회장이 ‘실력행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부회장이지만, 등기임원도 아니고 주총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삼성생명 주주권을 가지면 삼성전자 주총을 직접 주도할 수 있다. 등기임원이 아니지만 삼성전자 이사회 위에 설 수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도 지배한다. 사실상 이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의 ‘조종간’을 잡게 되는 셈이다.
다만 이 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거나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당분간 계속될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의 실적부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할 부담도 있기 때문”이라며 “일단 실력은 갖추되 전면 등장은 보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의 최종 성사 여부도 변수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어쨌든 양사간 합병은 이 회장 부재중인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경영능력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