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회장에 도전했던 4명의 후보가 연봉 10억 원에 달하는 은행연합회장직을 두고 다시 맞붙었다.
금융권 최고 요직이자 5대 금융협회의 맏형 격인 은행연합회장 자리의 주인이 11월에 결정된다. 박병원 회장의 임기가 오는 30일 만료되는데, 금융권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자리를 물려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연합회장은 10억 원에 달하는 연봉에다 은행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정부당국과 협의를 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은행권을 대표하는 인물을 뽑는 만큼 하마평에 오른 인물은 모두 은행장을 역임한 뱅커 출신들이다.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현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이 그 주인공들로, 이들에게는 ‘은행장’이라는 명함을 보유했었다는 것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KB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거론됐다가 아쉽게 막판에 명단에서 빠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같은 뱅커 출신들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4명의 이력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조준희 전 행장과 이종휘 이사장의 경우 자신이 근무했던 은행에 신입으로 입행해 은행장까지 역임하며 평생 한 우물만 팠던 정통 뱅커형이다. 반면 윤용로 전 행장과 김용환 전 행장은 관료생활을 하다 은행장으로 변신한 반관반민형 CEO(최고경영자)들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들의 이력 차이를 두고 백가쟁명식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통 뱅커 출신이 유리하다고 보는 쪽에서는 ‘관피아 척결’ 분위기를 이유로 조 전 행장과 이 이사장이 앞선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면 은행연합회는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민간과 관료사회를 모두 경험한 윤 전 행장과 김 전 행장이 적임자라는 의견도 만만치는 않은 상황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의중은 민간 쪽에 무게추가 좀 더 기울어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누가 되건 첫 번째 원칙은 관피아 배제라는 대전제를 깨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수장의 업무능력도 중요하지만 명분을 세워야하는 책임도 무거운 만큼 ‘정치적인 판단’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금융권에서는 조준희 전 행장과 이종휘 이사장이 ‘2강’을 형성하고, 윤용로 전 행장과 김용환 전 행장이 뒤를 쫓고 있는 판세로 보고 있다.
조준희 전 행장의 경우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나와 1980년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도쿄지점장, 종합기획부장, 개인고객본부장, 수석부행장 등을 거친 뒤 결국 23대 은행장까지 지낸 정통 뱅커다. 2013년 퇴임할 때까지 30년 넘도록 한 직장에서만 근무하며 내부 신임도 두터웠던 인물이다. 특히 은행장을 지내면서는 국책은행 기능에 치중해 개인고객과는 다소 거리가 있던 기업은행의 이미지를 ‘국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은행’으로 변신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은행연합회 전경. 임준선 기자
물밑 경쟁이 한창인 이들 후보와 달리 박병원 현 은행연합회장은 연임에 도전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은행연합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을 할 수 있다. 박병원 회장의 경우 지난 2011년 취임해 첫 번째 임기를 마치기 때문에 규정상으로는 연임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권은 사실상 박 회장은 후보군에서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행정고시 17회인 박 회장은 전형적인 관료 출신이기 때문이다. 2007년 2월까지 경제 관료였던 그는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으면서 민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하기도 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은행연합회장 선출과정에서 남은 관전 포인트는 ‘표 대결’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은행연합회는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다른 금융회사 관련 협회와 달리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회원사 총회를 거쳐 선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민간은행과 정책금융기관 22개사로 구성된 총회는 추천과 제청을 거쳐 후보를 압축한 뒤 표결로 회장을 결정한다. 최종후보가 1명일 경우 찬반 투표가 되겠지만, 복수의 후보가 추천될 경우 표 대결이 불가피하다.
은행권은 현재 판세로 볼 때 조 전 행장과 이 이사장이 최종후보로 격돌할 경우 결과는 예측불허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민간은행과 친분을 두텁게 표를 확보하더라도 22개 회원사의 절반에 가까운 정책금융기관들이 ‘윗선’의 의중에 따라 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잡히지 않았지만 은행연합회는 11월 중순경 차기 회장 선출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을 전해지고 있다. 은행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될 차기 연합회장 자리를 누가 거머쥘 것인지 은행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