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용서받을 자격 없어요’
2007년 12월 31일 하늘색 수의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단 6명의 입에서 회한어린 한마디가 터져나왔다. 일부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통곡했으며 일부는 ‘아, 어머니’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개중에는 성경책을 끌어안고 기도를 드리거나 염주를 쥐고 누군가에게 용서를 비는 참회의 시간을 갖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정부의 특별사면조치에 따라 무기수로 특별감형된 ‘사형수’들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무기징역으로 특별감형을 받은 ‘사형수’들은 죄를 깊이 뉘우친 모범수들로 모두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후 10년 이상 ‘사형수’로 살아왔다고 한다. <일요신문>은 45년동안 사형수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구명운동에 힘써온 ‘사형수의 대부’ 삼중스님으로부터 지난 2007년 말 특별감형된 6명의 재소자 중 3명에 얽힌 뒷얘기를 들어봤다.
특별감형자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1996년 8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페스카마호 사건’의 주역 전 아무개 씨다. 삼중스님에 따르면 조선족인 전 씨는 중국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감방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지내왔다고 한다.
전 씨가 주범으로 지목된 ‘페스카마호’ 사건은 언론을 통해 조선족 선원이 한국인 선원과 인도네시아 선원 등 11명을 살해한 잔혹한 살인사건. 하급선원이었던 조선족 중국인 6명이 선상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일으킨 살인사건으로 법원은 가담자 5명에게 무기징역을, 전 씨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전 씨가 주모자였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중국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중학교 교사로 일했던 전 씨는 자녀의 학자금 등을 벌기 위해 한국의 원양어선을 탄 것으로 전해진다. 무기로 감형된 후 전 씨는 삼중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무 큰 기쁨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유가족에게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강도살인으로 사형을 확정받고 14년간 ‘사형수’로 살아온 인 아무개 씨. 가정불화 및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던 인 씨는 은행에 침입,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자신을 제지하던 직원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돈 때문에 무고한 생명을 살해할 당시 그는 ‘악마’였지만 이후 불교에 귀의, 백팔십도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 삼중스님의 얘기다.
삼중스님은 “인 씨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내린 결론은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인 씨는 치아가 안 좋아 고통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인들이 보내준 치료비를 치료에 쓰지 않고 다른 재소자에게 선뜻 내어주었다. 물론 그의 죄는 밉지만 새로운 사람으로 변한 그를 쭉 지켜보면서 적잖은 감동을 받곤 했다”고 전했다.
김 아무개 씨는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자녀를 살해한 죄로 사형을 확정받고 13년간 사형수로 살았다. 공중파 방송의 범인 추적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던 김 씨는 ‘가짜 승려’ 행세를 하며 도피행각을 벌이기도 했지만 ‘사형수’가 된 후 불교에 귀의, 참회의 시간을 보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 씨는 어릴 때 소위 ‘귀신에 씌는’ 특이한 현상을 겪기도 했는데 ‘무당아들’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주변의 놀림과 괴롭힘을 받아왔다고 한다. 결국 김 씨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성장기 때부터 병적으로 ‘여자’에 집착한 김 씨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여자관계가 상당히 복잡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 여인과 가족을 살해하고 만다. 김 씨의 ‘가짜 승려’ 행각도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김 씨는 도피과정에서 ‘승려’로 변장, 지방의 절을 돌아다녔는데 염불을 어찌나 잘하던지 진짜스님들조차 깜빡 속았다고 한다. 이는 김 씨가 잡히게 된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승려행세를 하며 절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김 씨는 어느날 경찰특공대가 절에 들이닥쳤다고 한다.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김 씨는 ‘이제 다 끝났구나’ 하며 불당에 들어가 열심히 염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경찰특공대원들이 ‘벌써 튀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보인다’며 수선을 피우더라는 것이다. 이때다 싶어 김 씨가 황급히 도망을 쳤고 그제서야 특공대의 추격이 시작됐다. 김 씨는 굴을 파고 은신해 있다가 공개수배 소식을 듣고 더이상 불교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 자수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찰의 발표는 ‘검거’였다고 한다.
사형수가 된 김 씨는 삼중스님에게 “여자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 제 인생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제 자신을 잘 다스리고 살았더라면 그런 큰 죄를 짓지 않았을 겁니다.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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