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외모에 신경을 쓰는 남성들이 부쩍 늘었다. 거울 속 인물은 <꽃보다 남자> 구준표 역의 이민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앞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요즘 입사 면접 때문에 성형을 하는 남성들을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쌍꺼풀 수술 정도는 ‘애교’다. IT회사에 다니는 B 씨(29)는 2년 전 한창 취업준비를 할 때 큰 ‘공사’를 했다.
안면윤곽 수술의 일종인 주걱턱교정술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콤플렉스로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있었던 그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어려운 결심을 하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 달 내내 죽만 먹었어요. 시중에 파는 죽이란 죽은 다 먹어보고 비용도 2000만 원 정도 들었죠.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생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감도 많이 생겼거든요.”
입사 후에도 얼굴을 손보는 남자들이 적지 않다. 입사 3년차인 K 씨(32)는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받은 것은 사실 여자 상사의 말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눈매가 너무 날카롭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늘 신경이 쓰였던 것.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사의 조언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힘들었다. 강한 인상이 콤플렉스는 아니었지만 이후로 계속 자신의 이미지를 체크하게 됐단다. “키도 큰 편이었고 체격도 좋은데 매서워 보이는 눈이 상대방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지는 몰랐죠. 처음에 시술을 받았는데 티 나지 않게 살짝 하는 바람에 금세 풀려버렸어요.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 조금 굵게 한 번 더 했는데 결과는 만족스럽네요.”
L 씨(31)는 K 씨와는 반대의 이유로 쌍꺼풀 수술을 했다. 심하게 처진 눈이었던 그는 인상이 답답하고 착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착해 보인다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은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L 씨의 경우 업무상 만난 거래처 사람들이 자신을 ‘쉽게’ 보는 경향이 있어 마음 상했던 경험이 많았다.
또렷한 이미지에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그는 쌍꺼풀 수술을 했고 한동안 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다. 늘어진 살을 위로 올려주면서 생각보다 진하게 수술이 돼서 자리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어리게 보거나 만만하게 봐서 말을 놓는 경우도 많았어요. 기분이 상할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동료들로부터 농담 삼아 놀림을 받을 때도 많아서 수술을 하기로 했죠. 아직은 솔직히 어색한 게 사실인데, 멀리 봤을 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얼굴보다는 ‘몸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자기관리의 척도는 바로 딱 떨어지는 ‘수트발’(정장 옷맵시)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광고회사 2년차인 H 씨(30)는 단순히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1년 전부터 격투기를 시작해 지금은 관장에게 출전을 권유받을 정도가 됐다.
학창시절 운동선수 출신으로 운동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그이기에 평범한 운동은 흥미가 없었다. 운동량도 많아서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을 갖게 된 H 씨는 직장 내 ‘훈남’으로 소문이 났다. 정장만큼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 없지만 어떤 스타일의 옷이라도 그는 잘 소화해 낸다.
“인맥관리나 업무처리도 제 능력을 보여주는 요소지만 자기관리를 잘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창 결혼 적령기이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쓰는 것도 있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게 보여서 손해 볼 것은 없거든요.”
증권회사에 다시는 M 씨(31)는 훈남 이미지보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운동에 목매는 직장인이 됐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회사 인근의 헬스장으로 직행한다. 차를 몰고 10분쯤 가야 하지만 회사에서 비용을 지불해주는 곳이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출근’하고 있다.
한 시간 정도 땀을 빼고 나면 가볍게 웰빙 샌드위치 정도로 점심을 해결한다. M 씨는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를 지녀 같은 부서에서도 ‘영감’으로 통했다. 업무상 움직일 일이 거의 없다보니 점점 불어나는 뱃살이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한번은 승진에서 미끄러진 적이 있었어요. 물론 외모 때문은 아니겠지만 살찌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이 게을러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운동을 시작하고 활력이 생긴 것도 좋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몸을 보니 욕심도 생기고 업무도 좀 더 능동적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요즘 유행하는, ‘몸에 딱 떨어지는’ 정장을 살 계획이다. ‘옷걸이’만으로 외모의 경쟁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패션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하는 것. 이벤트 기획사에 다니는 Y 실장(36)은 알아주는 패션 마니아다.
티셔츠 하나를 사더라도 남들이 흔히 구할 수 있는 옷은 사지 않는다. 미혼인 그의 옷차림은 20대 못지않다. 상의나 하의에는 항상 포인트가 되는 특이한 문양이나 액세서리가 있어야 한다.
패션뿐 아니라 나이보다 서너 살 어려보이는 얼굴에 들이는 노력도 남다르다. 10대 때 여드름으로 고생한지라 유난히 민감하다. 시즌에 맞춰 피부과 출입은 기본이고 마사지도 받는다. 여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화장품 파우치도 갖고 다닌다. BB크림(기초화장품의 일종)과 로션, 립글로스, 기름종이, 미니 향수는 필수 지참 목록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활기차고 유행에 민감한 직업적 특성을 옷차림에 반영하게 됩니다. 영업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일단 제 옷차림부터 눈에 들어올 테니까요. 이 사람은 뭔가 독특하고 일도 그만큼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죠.”
사람과사람들 심리연구소(www.simli.com)의 김정주 박사는 “많은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벽이 무너지고 있다”며 “직장생활 가운데서도 생존을 위해 서로의 영역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를 맞아 직장 내 남성들의 생존 법칙도 다양해졌다. 외모지상주의의 병폐로 볼 수도 있지만 좋게 본다면 외모관리도 자기관리일 터. 어쨌거나 ‘가꾸는 남성들’은 계속 늘어날 듯하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