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의 한 장면. | ||
10년 이상 섹스 칼럼을 써온 나에게 쏟아지는 대다수의 질문은 역시 ‘섹스를 잘하는 비법’이다. 여자의 성감대, G스폿 찾는 법, 남녀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체위, 여자를 절정에 이르게 하는 피스톤의 방법 등 오르가슴에 이르게 하는 수많은 섹스 테크닉에 대한 질문이 많다. 물론 커플의 섹스 라이프에 이런 다양한 지식과 테크닉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나는 등이 가려운데 그가 자꾸 팔을 긁어준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나. 그런데 심각한 섹스 트러블은 이 모든 섹스 지식을 습득한 이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지?
남자의 섹스 스킬과 여자의 만족감은 비례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섹스킹’이라고 소문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후배 A는 “내가 섹스를 하는 건지, 아크로바틱을 하는 건지 헷갈리더라”며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의 리드에 따르다보니 내가 어느새 <쌍화점>의 기녀 못지않은 기방 체위를 하고 있더라고. 그가 섹스 스킬이 화려한 것은 분명히 알겠는데, 만족감이 높지는 않았어. 그가 체위를 바꿀 때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좀 더 느긋하게 안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그에게 낙제점을 주었다. A가 그에게 원한 것은 일방적인 과시형 섹스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주고받는 쌍방형 섹스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돌싱’인 B와 술을 마시다 우리 집까지 직행했다. 그런데 키스와 애무를 거쳐 그가 나에게 막 들어오려는 찰나에 나는 그를 거절했다. 합의 하에 모텔까지 가서 섹스만은 안하겠다고 하는 여자도 얄미운 마당에, 한껏 섹스 무드를 조성해놓고 삽입의 순간에 ‘No’라고 냉정하게 돌아선 나에게 B는 욕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어른 세계의 불문율을 짐짓 모른 척하면서 반칙을 범했다.
그 이유는 B의 이기적인 섹스 스타일 때문이었다. 내가 채 흥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치 챈 B가 부드러운 키스와 정성스러운 애무로 나를 달구는 대신 집중적인 손장난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을 때, 나를 빨리 흥분시켜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는 B의 속내를 눈치 챘기 때문이다.
B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면 여자는 흥분한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실전에 구사하기 전에 섹스 파트너인 나의 로맨틱한 감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금은 더 배려했어야 했다. 포르노 속의 여자는 그저 “더 세게” “더 빠르게” “바로 거기”를 외치지만, 현실의 여자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더 세게”를 외치면서도 남자가 부드럽기를 바라며, “더 빠르게”를 원할 때도 있지만 천천히 진행해주길 바란다.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부드럽게 시작해서 빠르게, 천천히 시작해서 점점 스피드를 내는 것은 어떤가.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자는 남자가 사정할 때 절정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그가 사정 후 포근하게 안아주면 정신적인 만족감을 충분히 느낀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남자친구를 사귀는 후배는 “그는 섹스할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스킨십을 자주 하는 편이야”라며 은근히 남자친구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때 브라질 남자를 사귀었던 나 역시 함께 찜질방에 놀러갔다가 그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키스를 하려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브라질 출신의 그는 섹스 테크닉도 뛰어났지만, 온몸을 구석구석 애무해주는 키스 테크닉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그가 내 등 뒤에서 나를 안아줄 때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기분에 행복해졌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 남성들은 여자를 성적으로 만족시키는 데만 치중할 뿐, 로맨틱한 무드를 조성하는 데는 서툴다. 남자가 여자의 기분은 무시한 채 그녀의 몸이 느끼는 성적인 흥분에만 집중하면 여자는 절정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성감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얄미운 섹스 패턴에서 벗어나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애무해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어떤가. 섹스에 있어서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만큼 좋은 기술은 없다.
박훈희 성전문칼럼니스트
>>필자소개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세븐틴><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