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진 검찰총장이 5월 25일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러나 현 정권은 어떤 식으로든 도덕적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전망이다. 특히 검찰과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 대해선 어느 때보다 강한 비판 여론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국세청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간접적 원인으로 꼽히는 ‘박연차 게이트’의 단초를 제공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임채진 검찰총장과 한상률 전 청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인물들이어서 일각에서는 ‘옛 주군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난까지 일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총 책임자인 임채진 검찰총장은 17대 대선 한 달을 남겨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선 직전에 선거개입 논란을 유발할 수 있는 기관의 장을 임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노 대통령이 자꾸 검찰총장 임명을 고집하는 것은 막판 대선에 검찰을 동원해보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기관장 인사를 미룬다는 것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당시 유력하게 거론된 검찰총장 후보는 임채진 법무연수원장과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 등이었다. 특히 검찰 내부 여론은 안 지검장에게 쏠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해 출신인 노 대통령이 남해 출신의 임 연수원장보다는 사실상 같은 지역인 부산 출신의 안 지검장을 임명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결정은 달랐다. 그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의 의견 등을 수렴해 임 연수원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그러자 총장 임명을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라던 한나라당도 더 이상의 반대를 하지 못했다. 임 총장은 같은 남해 출신인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권력기관인 국세청장 자리도 공석이었다. 전군표 전 청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중도에 하차했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았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권력기관장 2명을 임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오해를 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상률 당시 차장을 청장에 임명했다. 역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외부 인사가 아닌 내부 승진을 통해 청장을 임명한 것. 한때 노건평 씨나 박연차 회장 등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정복 전 중부국세청장 등이 유력후보에 올랐으나 노 전 대통령은 내부 관행대로 조사국장 출신의 한 전 청장을 선택했다. 이처럼 두 기관장의 임명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노 전 대통령은 비판과 압력을 뒤로한 채 이들을 ‘넘버 원’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이들 권력기관들은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러한 움직임을 놓고 기관장들이 새 정부의 재신임을 얻기 위해 등을 돌린 결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해당기관 관계자들도 “자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전 정권에 대해 사정을 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정권을 뺏긴 이상 일정 부분은 통과의례로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아무튼 검찰은 공기업 비리 척결 등을 내세워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들어갔다. 한국철도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영역을 가리지 않았다. 수사 의도와는 달리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임채진 총장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얘기가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 한상률 전 국세청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국세청이 지난해 11월 박연차 회장을 고발하면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주변을 본격적으로 옥죄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이인규 검사가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발령나면서 사정작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 부장은 지난 99년 워싱턴 영사관에 근무하면서 당시 워싱턴에서 유학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과 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이 되면서 노 전 대통령 본인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다. 형 건평 씨가 구속됐고 친구이자 측근이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오른팔 이광재 의원, 오랜 후원자인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도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이 초토화된 것.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이었다. 그동안의 특수수사와 달리 검찰은 수사과정을 지나치게 자세하고 공개했고 범죄 혐의와 관련이 없는 부분도 자세하게 흘리면서 여론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한 가족을 압박하는 80년대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기소를 놓고도 지나치게 질질 끌면서 노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수사팀이 지나치게 자세하게 브리핑을 한다”거나 “수사를 하는 건지 중계방송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수사팀 내부에서 수사정보가 흘러나오면서 검찰이 ‘오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결국 검찰의 이런 수사 행태는 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간접적인 원인이 됐다.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회장과의 돈거래를 뇌물 수수 혐의를 넘어 파렴치범으로까지 몰고 가면서 노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압박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이후 일련의 과정들을 종합해보면 의도성은 없었을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박연차 게이트’는 한상률 전 청장과 임채진 검찰총장의 합작품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인연을 떠나서 각종 비리에 대한 세무조사 및 수사가 두 권력기관 본연의 임무라 하더라도 두 기관의 ‘오버’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도덕적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