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 | ||
아침에 섹스를 하면 오르가슴에 이르기가 더 쉽다? 얼마 전 수면센터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이 “수면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성기능도 저하된다”라고 말했던 것. 그는 “꿈을 꾸면서 숙면을 취하는 렘수면 상태가 되면 신체 내 혈액 순환이 왕성해지는데, 특히 음부로 혈액이 공급되는 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발기 능력이 향상된다. 페니스가 혈액 내의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남자가 아침에 발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저하되고, 성기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성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내 남자도 수면장애 테스트를 받아보게 해야 하나? 그에게 장어를 요리해주기보다 잠을 제대로 재웠어야했나? 아니, 그보다 여자도 아침에 발기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렘수면 상태에서는 당연히 여자도 발기한다. 남자의 성기처럼 눈에 뜨이게 드러나지 않아서 여자의 발기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자 역시 렘수면 상태에서는 성기능이 최고인 것. 그렇다면 성기능이 최고인 아침에 섹스를 하면 오르가슴에 이르기가 더 쉬운 것일까? 이미 성기가 발기한 상태에서 성감대에 자극을 주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느낄 테니 말이다. 아쉽게도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한진규 원장은 “아침의 섹스가 하루 중 어느 때보다 오르가슴에 쉽게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렘수면에서 벗어난 상태이니 발기도 어느 정도 수그러진 상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렘수면에서 벗어나 발기되었던 성기가 수그러졌다고 해도, 아침이 하루 중 페니스가 가장 건강한 때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오르가슴에 이르기도 더 쉽지 않을까?
아, 모닝 섹스를 한 것이 언제였나. 그가 출근 준비를 마친 나의 옷을 다시 벗겼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연애 초기에는 내가 “회사 늦어” “오늘 아침에 중요한 회의 있어” 등등의 이유를 대며 몸을 빼낼라치면 그는 “나도”라고 말하며 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붓곤 했다. “옷도 입었고, 화장까지 다 했단 말야”라고 투정을 해도 “다시 하면 되지”라며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그때 나는 그가 퍼붓는 애무와 삽입의 자극보다 내가 사랑스러워 어쩔 수가 없다는 듯한 그의 액션에 더 행복했다. 그러나 커플 대다수가 하룻밤 두 번도 모자라 힘이 닿는 한 몇 번씩이나 섹스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 한 번 더 모닝 섹스를 하는 것은 겨우 연애 초기 몇 번뿐이다. 대게가 사귄 지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하루 한 번이 일상적이고, 첫 번째 섹스가 미진했다 싶으면 의무감으로 한 번 더 섹스를 하는 것에 그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 생활에 치이다 보니 서로가 몸도 마음도 피곤했고, 성욕도 줄고, 무엇보다 연애와 함께 섹스도 권태기에 접어들어 섹스보다 휴식이 더 간절했기 때문이다. “피곤해”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야” “나,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돼” 등등의 핑계를 대면서 은근히 섹스를 피하게 된 것은 그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가 일요일 늦은 아침에 진한 애무를 해왔다면? 나는 심지어 마법에 걸린 중이었더라도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그의 부드러운 애무를 느끼면서 ‘아, 내가 정말로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행복감에 성욕이 생겼을 테니까. 여자에게 아침의 애무는 저녁의 애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술 취한 밤의 열정적인 애무는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의 배설 같아서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늦은 아침의 부드러운 애무는 욕망이 아닌 온전한 사랑처럼 느껴진다. 밤 시간 동안의 혈액 순환으로 영양 보충을 한 페니스와 애정으로 충만한 정신이 결합된 섹스. 우리가 항상 부르짖는 오르가슴의 필수 조건이 아닌가.
오르가슴은 섹스 라이프의 변화를 불러온다. 아침의 섹스로 오르가슴을 느낀 커플은 이내 밤 섹스의 횟수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모닝 섹스가 오르가슴에 이르기가 쉽건 어렵건 과학적인 사실을 미지수로 남겨놓더라도, 로맨틱한 모닝 섹스 한 번으로 섹스 권태기가 극복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잠을 잘 자야 모닝 섹스도 즐거울 텐데, 그렇다면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성 작용이 있는 술과 담배, 커피를 멀리하는 것은 기본이고, 숙면을 취하려면 무엇보다 빛 조절에 성공해야 한다. 밤에는 백색 형광등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멀리하고, 노란빛의 백열등을 켜는 것이 좋다. 2000럭스 이상의 빛이 시신경을 자극하면 뇌는 잠을 깨는 코르티솔을 분비하고, 빛의 양이 500럭스 이하로 떨어지면 뇌가 잠이 오는 멜라토닌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침실에 형광등 대신 백열등 스탠드를 두는 것이 수면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달빛 같은 스탠드가 켜진 어스름한 방을 떠올려보라. 어쩐지 로맨틱하지 않나. 이런 불빛이라면 그녀는 모닝 섹스만이 아니라 밤에 한 번, 아침에 일어나 다시 한 번 섹스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
박훈희 칼럼니스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터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