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국세청 국정감사를 받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 | ||
국세청에 대한 이 같은 목소리는 비단 이번 건 때문만은 아니다. 국세청은 그동안 내부 고발자나 내부 비판에 대해 인색한 모습을 자주 보여 왔다. 보안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국세청의 조직 특성상 내부 단속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없지 않지만 지나친 통제는 오히려 물을 썩게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 조문정국 이후 자칫 국세청 쪽으로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해 왔던 수뇌부가 내부의 동요를 막기 위해 조치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세청이 광주지방국세청 나주세무서 소속의 6급 김동일 계장을 파면 조치한 이번 사건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무원의 경우 파면 조치는 퇴직금이 2분의 1밖에 지급되지 않는 사실상의 최고 징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게다가 파면시킨 김 씨를 검찰에 고소까지 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준일 광주청 감사관은 “김 씨가 국세청 조직과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해 고소하게 됐다”며 “2만 명에 달하는 국세청 직원들의 자존심을 되살린다는 차원에서 법률적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씨 외에도 국세청 내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국세청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민주당의 우제창 의원은 허병익 국세청 차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서울 성동세무서에 근무하는 이 아무개 직원이 최근에 국세청 내부게시판에 김 씨와 비슷한 비판 글을 올린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 의원은 이 자리에서 “이 씨도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이번 글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파문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부 비판 혹은 고발에 거의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여 온 국세청의 조직문화에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씨 사건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비슷한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2년 12월 한 지방 국세청의 A 감사관이 국세청 수뇌부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사건이다.
당시 A 감사관은 ‘국세청이 몇몇 대기업의 법인세 포탈을 묵인했다’는 내용의 비리를 폭로했고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세청은 A 감사관에 대한 표적감찰을 했고 곧바로 다른 지방의 일선 세무서로 하향 전보 조치했다. 국세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A 감사관을 비밀엄수 의무 위반 및 공무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중징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A 감사관은 언론과 시민단체를 통해 ‘국세청이 몇 개월 동안 자신을 숙청하려 했다’며 자신에게 행해진 감찰이 내부 고발에 대한 수뇌부의 ‘응징’이었다고 폭로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가 부패방지법(부패행위 신고 등 이유로 신분상 불이익 처분 조치 및 근무상 차별 금지)에 의거해 징계방침을 보류할 것을 국세청에 요청했고, 이후 징계 방침이 철회됐다. 그 후 A 씨가 폭로한 의혹은 검찰 수사로 이어졌고 A 씨는 지난 정권 말인 2007년 12월 사무관 승진까지 했다. 한번 감찰 리스트에 오르면 승진은 어렵다는 국세청 내부 분위기에 비춰보면 A 씨의 승진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반면 이번 김동일 씨 파면은 사실상 정권과의 암묵적인 교감에서 비롯됐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대조적이다. 광주지방국세청 한 간부는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나 “지방청장도 어쩔 수 없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정권과 관련해 말 못할 부분이 있다”고 밝혀 이번 김 씨 파면사태에 윗선 개입 또는 외부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A 씨의 경우처럼 내부고발에 의해 문제가 된 사건이 또 있었다. 지난 2005년부터 서울지방국세청이 실시했던 모 외국계 담배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때의 일이다.
당시 국세청은 외국계 담배회사 세 곳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했으며 이 중 한 회사가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하지만 이 담배회사 측이 세무법인과 전직 국세청 간부 등을 동원해 세무조사 무마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현직 국세청 고위직 공무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사건이 불거졌던 지난해 4월은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이 모든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세청 수뇌부가 잔뜩 숨죽이고 있던 시기다. 때문에 당시 국세청으로서는 또 다른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이 터지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세무조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진정으로 촉발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 3부에서는 “서울지방국세청이 모 담배회사를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다는 진정과 첩보를 입수, 확인 작업 중이다”며 “이 회사가 모 회계법인에 근무 중인 전직 국세청 고위간부를 통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시도하고, 이전가격 조작 행위에 대해선 고발되지 않았다는 진정도 검찰에 접수됐다”고 밝힌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진정서를 낸 직원 역시 일선 세무서로 하향 전보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로비를 받은 당사자로 지명된 국세청 간부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할 즈음에 미국 쪽으로 발령이 나서 1년 정도 근무하다 올해 초 다시 모 지방청 고위직으로 복귀했다. 내부에서 문제가 터지면 하위 공무원들은 징계를 통해 입을 막으려 하는 반면 고위 공무원들은 조직 차원에서 감싸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사안인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관련 인사가 귀국하면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 인사가 귀국한 뒤에도 사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담배회사는 국세청의 과세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소를 제기해놓고 있다.
위 사건뿐 아니라 국세청은 자신들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오면 감찰팀 등을 동원해 내부 고발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봐온 정관가의 인사들은 국세청 조직 문화가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내부고발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 점과 줄서기 문화 등이 닮았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권력기관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조직일수록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