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장을 맡고 있는 정광용씨. | ||
박사모는 설립 초부터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뿌리 역할을 했던 ‘노사모’와는 달리 정치이념을 배제하고 순수한 박근혜 팬클럽으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최근 박사모는 서울 종로에서 ‘노무현 정권 실정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역사날조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등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사모의 이런 정치행보를 두고 ‘박사모가 정치외곽조직으로 본격적으로 변신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하고 있다.
이렇게 박사모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정작 그 정체에 대해선 외부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 모임은 15명의 운영진이 모든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있다. 20대가 7명, 30대가 5명으로 지도부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대한민국 젊은 보수의 결집처로 자리잡고 있는 박사모. <일요신문>은 이 모임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 따라가 봤다.
서울 강남 네거리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박사모 ‘열혈’ 운영진들이 하나 둘 사무실로 모이기 시작한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16평짜리 이곳 사무실이 미래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진기지인 셈. CF 감독인 정광용 회장(46·아이디 나라사랑)이 예전 자신이 사무실로 쓰던 이곳을 박사모에 ‘기증’해 월세 66만원은 회원들의 주머니에서, 보증금은 정 회장이 내줘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박사모 활동의 원천은 물론 2만여명의 일반 회원들 힘에서 나온다. 이들은 가입과 동시에 준회원 자격을 부여받은 뒤 운영진의 결정에 따라 일반회원-우수/특별회원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우수/특별회원은 현재 2천여 명 정도 되는데 가입 기준은 활동의 열성도에 달려 있다. 일반회원들은 주로 게시판에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박사모의 활동과 관련한 글들을 올리는데 운영진이 그것들 중에서 우수한 ‘작품’을 쓴 일반회원들을 우수회원으로 승격시킨다. 이들은 우수회원 방에서 따로 모임을 가지며 박사모 활동을 둘러싼 각종 의제들을 토론한다.
그리고 운영진은 우수/특별회원 방에서 논의된 사항 가운데 추진해볼 만한 것들을 추려 공론화한 뒤 박사모의 공식 활동계획으로 결정한다. 운영진은 15명이 있는데 이들이 실제로 박사모의 최고 의사 결정을 하는 셈이다. 운영진 과반수가 발의해 어떤 안건을 상정하면 과반수 찬성으로 모든 활동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운영진 참여는 우수/특별 회원 가운데에서도 더욱 활동을 열심히 하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회장이 운영진 참여 여부를 제안한 뒤 이루어진다.
15명의 운영진은 전국적인 정기모임(정모)이나 집회가 있을 때 더욱 바빠진다. 피켓도 만들고 음향장비도 빌리고 회원들 간 연락도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무급인 만큼 운영진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모임이 굴러갈 수가 없다. 그래서 운영진에서 일을 하다가도 생업에 곤란을 느낄 정도가 되면 다시 일반회원으로 스스로 ‘강등’해 활동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 지난 9일 ‘박사모’ 회원들이 YTN 본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근혜 대표의 순수 팬클럽으로 시작한 이들이 최근 정치행보를 시작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정 회장은 CF 관련 일을 하는데 모임을 처음 만들 때만 해도 주변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어 약 두 달 동안 자신의 일은 하나도 못했다고 한다. 부인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러느냐’며 압력을 가해 할 수 없이 생업전선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에도 자신의 일이 많아지면 조철용 회장(대행)이 정 회장의 전권을 위임받아 박사모 활동을 이끌고 있다고.
15명의 운영진은 대부분 자신들의 신분이 공개되기를 꺼리고 있다. 한 운영진은 “우리 모임에 공무원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그들은 신분이 공개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선뜻 나서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운영진도 정치적인 의미에서 보면 야당생활을 하는 것인데 드러내놓고 활동하기가 솔직히 두렵다”고 말했다.
현재 박사모 사이트에는 운영진 15명의 아이디 명단이 공개돼 있다. 먼저 이들 중 20대가 7명으로 가장 많고 30대가 5명, 40대는 3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박근혜 대표에 대한 보수적인 지지층을 감안하면 지도부의 연령층도 높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지도부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이에 대해 정광용 회장은 “참신한 아이디어는 젊은 층에서 많이 나온다. 의식적으로 20대 위주로 운영진을 선발하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는 숨어 있는 젊은 보수층들이 의외로 많다”고 밝혔다. ‘여울목’(38·김동주·광고회사 운영중)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운영진도 “운영진에서 20대 청년의 역할을 가장 많이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중심세력이고 사회변화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박사모에서도 그들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운영진 선발 기준은 오프라인 활동을 열심히 하고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글들을 많이 올리는 회원들 중에서 뽑는다.
운영진 15명 중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회원도 있다. 한 남성 운영진은 현재 광고회사를 운영중인데 예전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20대 운영진은 대부분 직장인이고 대학교 조교도 있단다. 30대 운영진에는 의사도 있으며 평범한 주부도 있다고. 그 외 다른 운영진은 신분 노출을 매우 꺼려 회장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운영진 중에서 ‘똘비형님’(26)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성 회원이 있는데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미모의 직장인이라고 한다. 정 회장은 ‘똘비형님’을 박사모의 대변인으로 점찍고 이 모임의 얼굴로 내세울 예정이라고 한다. 실명을 밝히기를 거부한 ‘똘비형님’은 이에 대해 “대학 때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고 참여를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단군 이래 청년 실업률이 최고다. 자살률도 실업률 못지 않게 최고로 높다고 한다. 경제는 살아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서민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그들이 언제 호의호식하겠다고 했는가.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으면 그들은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먹고사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회원들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이런 일 하는 게 아니다.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어 조용히 나섰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 ‘박사모’ 카페에 공개된 운영진. | ||
정광용 회장도 청년단 활동에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그는 이에 대해 “청년단에서 자율적으로 토의되는 모든 결정은 박사모 중앙 운영진과 완전한 수평적 협조 체계를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전격적인 지원과 지지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사모는 노사모와의 차별화에 상당한 역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끝까지 순수한 아마추어 정치집단으로 남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표와도 지난 5월 서울 양재 시민의 숲에서의 만남을 끝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계획이다. 자칫 ‘박근혜 2중대’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도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 박사모는 회원들의 찬조금으로만 운영되고 또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에 특정정당 편들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 편향될 소지를 줄이기 위해 박사모 회칙에 운영진 및 지부장의 정계 진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불이행시 강퇴 조치와 낙선운동까지 벌일 것을 명시하고 있다. ‘여울목’은 이에 대해 “정치권에 진출할 목적을 가지고 그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박사모에 가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가 실현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정계 진출 불가라는 강력한 차단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박사모의 순수한 정치적 목적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밝히면서 “우리는 쾌걸 조로와 같이 뜻한 바를 이루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