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가 국민대통합을 위한 3단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27일 연세대에서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다음으로 정치권과 재계, 관계, 시민단체, 국가원로 인사 등의 합의를 통한 ‘사회통합과 국가투명성 제고를 위한 반부패국민협약’(가칭)을 체결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같은 단계를 거쳐 내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정·재계뿐만 아니라 관계 인사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 대사면을 단행함으로써 ‘국민대통합 프로젝트’를 완성할 예정이라는 게 정가 소식통의 전언.
다시 말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관용을 베푼 다음 국민 모두가 미래로 나가자는 취지가 담긴 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첫 단추인 ‘진실위’가 조만간 구성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청와대의 ‘국민대통합 프로젝트’는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활동 결과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반민특위 해체 이후 잘못된 역사에 대한 규명이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데 누군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사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과거사의 포괄적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
대통령의 이 발언이 있은 다음날 ‘느닷없이’ 열린우리당 내에선 일제시대부터 군사정권 때까지의 과거사를 규명할 ‘진실위’ 구성을 추진하고 나섰다. ‘진실위’ 구성 시기에 대해 민병두 열린우리당 기획위원장은 “대통령의 8·15 경축기념사가 발표된 이후에 구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15 기념사를 통해 “10년 이내 자주국방”을 천명했고, 이후 주한미군 재배치와 이라크 파병 등 국방·안보와 관련한 중대 현안들이 가시화됐다.
그런데 올해 8·15 기념사에는 과거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대통령 입장이 발표될 것이라는 암시다.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과거사 진상규명’이 급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여권에서 ‘진실위’를 구성하려는 까닭은 뭘까. 왜 ‘뜬금없이’ 과거사 청산문제를 정치권 화두로 제기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진실위’ 구성 논의가 처음 시작된 시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결정 이후 청와대는 집권2기 내각을 구성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말께 열린 청와대의 비공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수석비서관이 ‘진실위’ 구성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는 것.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당시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과 이라크파병 문제, 남북 및 한미관계 개선 문제 등 주요 국정과제를 적극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그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부정부패 청산 등을 당면과제로 삼아 적극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 자리에서 한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추진했던 ‘진실과 화해위원회’와 같은 사회통합 운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통합과 부정부패 청산을 위한 건의였다”고 설명했다.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런데 그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가 처음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건의했던 수석비서관에게 실무책임을 맡겨 ‘반부패국민협약’(가칭, 이하 반부패협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반부패협약은 정치권과 재계, 관계, 검찰 등 사정기관, 국가원로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모여 범국민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내용이 주요 골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시 말해 ‘진실위’를 통한 과거사 진상규명을 거쳐 ‘반부패협약’으로 관용과 용서를 베푼다는 것.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반부패협약과 관련된) 청와대 (정책)안을 아직 보지 못했다”면서 “진실위가 구성된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당이 조율해야 할 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단계에선 진실위를 구성한다는 원칙만 정해져 있기 때문에 향후 진행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대통합’을 위한 첫 단계인 ‘진실위’ 구성원칙만 수립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
국민대통합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에선 대규모 사면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국민통합 차원에서 대사면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대통령 측근비리 및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사면을 단행할 만한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었다.
앞서 언급했던 정치권 인사는 “항간에 8·15 대사면설이 흘러나오고 있으나, 대부분 인사들의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사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반부패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선 시민단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시민단체를 설득할 시간이 촉박해서 8·15 사면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내년 노 대통령 취임 2주년 때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면 범위는 구속된 국민의 정부 시절의 실세들과 대통령 측근비리 및 불법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구속되거나 불구속 기소된 여야 정치인과 재계 인사 등 광범위하게 포함될 전망이다. 여기에는 권노갑·박지원씨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노 대통령의 ‘왼팔’이었던 안희정씨를 비롯한 정대철 전 의원 등이 사면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사조직인 ‘부국팀’ 부회장이자 이 후보의 법률고문을 지낸 서정우 변호사와 김영일 전 의원 등 한나라당 관련 인사들도 사면될 공산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여당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논란과 정수장학회 문제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 상징되는 야당과의 ‘화합’차원에서 마무리될지도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는 이처럼 대사면 조치를 단행하는 대신 정치자금법 등 부정부패관련 법안을 더욱 강화, 처벌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는 대신 ‘미래의 잘못’에 대해선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노 대통령이 천명할 것이라는 전언.
이 같은 국민대통합 프로젝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다.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어느 나라에서나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해 화해와 국민통합을 이루지 않았느냐”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청와대 출신인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민화합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면서 “좋은 일을 하는데 중간에 보도가 나가면 정책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다”며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