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50~60년대에 ‘서울은 이병철, 부산은 김지태’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당시 국내 재벌을 대표했던 이 삼성 회장과 김 삼화그룹 회장이 운명적으로 등장한다. 고 김지태 회장은 5·16장학회의 모태가 되는 부일장학회 창립자로서 5·16 쿠데타 이후 이 장학회의 자산을 모두 박정희 정권에게 반 강제적으로 양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김 회장이 ‘퇴장’당하고 난 뒤 5·16장학회에 등장한 재계의 대표적 인사가 바로 이 회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최근 입수한 1962년 5·16장학회의 창립 이사진 7명의 명단에는 이 회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당시 7명의 이사진은 이관구 재건국민운동본부장, 고원증 법무장관, 김용우 국방장관, 윤일선 학술원 회장, 김영기 전 대구사범학교장 등 대부분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차출된 인사들이었다. 여기에 당시 재계를 대표하는 두 재벌 기업가인 이병철 삼성물산 회장과 김연수 삼양사 회장도 포함됐던 것.
하지만 당시 이 회장과 김 회장은 이미 각자의 장학재단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62년 7월부터 65년 9월까지 3년 2개월간 5·16장학회 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5·16장학회 문제로 미묘한 인연을 맺은 삼성과 삼화, 당대 두 재벌가는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에 모직사업을 놓고 또 한번 운명이 엇갈린 적이 있었다.
당시 신익희 등 민주당의 정치자금줄이었던 김지태 회장에 대해 이승만 정권은 회유와 압박을 반복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승만 정권의 회유를 거절했던 김 회장은 결국 조선방직을 빼앗기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조선방직은 이 대통령의 양아들로 자처하던 한 인사에게 넘겨졌으나 파산하고 말았다.
이 대통령에 이어 김 회장을 회유하고자 나선 이는 이기붕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매체인 ‘서프라이즈’는 최근 보도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기붕은 김 회장에게 모직 공장을 미끼로 내놓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자금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고, 그 보복으로 이기붕이 미끼로 내놓은 모직 공장은 그 뒤 삼성의 이병철에게 돌아갔다. 삼성 그룹의 오늘을 가능하게 한 제일모직이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승만 정권과 5·16 군사쿠데타 격변의 시대를 거치면서 당대의 두 재벌 중 한 사람은 몰락하고, 한 사람은 국내 최고의 기업가로 성장했던 셈이다.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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