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깨 너머 연인>. | ||
몇 년 전 나와 잠깐 사귀었던 외국인도 하룻밤 섹스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를 거절했던 것은 내가 정숙해서도 아니었고, 그가 싫어서도 아니었다. 다만,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내숭형 거절 멘트인 ‘No. 너무 빠른 거 아닐까’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그는 애무하던 손을 멈추고 내 이마에 키스했다. 그는 여자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하는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차마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우리 하던 거 마저 할까?”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그와의 섹스를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외국인과의 섹스에서는 무조건 솔직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솔직해진 두 남녀의 섹스는 절정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새삼 알 수 있었다.
여자 입장에서 한국 남자들과의 섹스에서 솔직해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남자의 가슴 애무에 흥분하여 신음이라도 내지르면 남자는 ‘만족했나보지?’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버리고, 심지어 섹스 후에는 “너, 오늘 되게 느끼더라”라고 평을 하기까지 해서 여자를 쑥스럽게 만들 때도 있다. 그래서 부끄러워진 다음 섹스 때부터 여자가 표현을 자제하면 석녀 같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외국인은 여자가 살짝 몸을 비틀면 ‘여기구나’라고 느끼면서 그곳을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애무해준다. 여자가 “지금 멈추면 안 돼”라고 소리를 지른다 해도 섹스 후 두고두고 놀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뿐더러, 여자가 ‘싫다’는 일은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가 오럴 섹스가 싫다고 해도 “좀 해주면 안돼?”라고 오럴 섹스를 강요하지만, 서양 남자들은 여자가 ‘No’라고 말하면 여자의 의사를 철저히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 남자들은 마치 사정의 순간을 위해 섹스하는 사람처럼 키스, 애무 등 몸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를 삽입 전 후딱 해치워 버리고 싶어하지만, 서양 남자들은 키스, 애무를 그 자체로 즐기면서 여자에게 생애 최고의 섹스를 선사한다. 이러니 외국인과의 섹스를 경험한 여자가 한국 남자와의 섹스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자가 외국인과의 섹스를 탐하는 것은 단지 페니스의 크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아무리 섹스 애티튜드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아도, 남자들의 마지막 질문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 ‘그래서 큰 게 좋냐고’라는 것이다. 물론 페니스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다. 그런데 페니스가 클수록 여자의 만족도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페니스가 너무 작아서 섹스 트러블이 생길 정도가 아니라면 여자는 대부분 남자의 크기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하지 않는다. 남자도 여자의 가슴이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좋아하지 않나. 하지만 여자의 가슴이 너무 작아서 문제가 될 정도가 아니라면, 여자의 가슴이 작아서 섹스 자체가 싫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목욕탕에 가서 서로의 물건을 확인해보라. 페니스가 커봤자 얼마나 크고, 작으면 얼마나 작겠는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들의 크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여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페니스가 너무 크면 남자를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섹스를 할 때마다 여자가 통증을 호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너무 큰 빅사이즈의 남자를 만난 사만다처럼 삽입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여자도 있을 수 있다.
나는 페니스가 긴 남자와의 섹스에서 여성 상위는 피하는 편이다. 언젠가 그것이 유난히 긴 남자와 섹스를 하는데, 다른 체위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여성 상위 체위로 돌입하여 피스톤을 하려고 내려앉을 때마다 나의 은밀한 곳을 그의 페니스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를 진정으로 만족시키고 싶다면, 페니스의 크기에 신경 쓰기보다 섹스 중 여자의 몸짓 언어를 잘 파악하고, 그녀의 솔직함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다각도로 해보는 것이 어떨까.
-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처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