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린보이>. | ||
박훈희 칼럼니스트
오늘은 칼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일요신문>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녀와의 마지막 섹스 장소는? 최근 10번의 섹스 장소는 어디였나? 파트너의 집 아니면 나의 집, 혹은 번갈아가며 두 사람의 집을 오갔나? 유부남, 유부녀라면 모두 “집”이라고 답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집이라도 침실에서만 잠자리를 가졌는가, 아니면 화장실, 거실에서도 시도했는가는 큰 차이가 있다. 여자는 때로 장소만 바뀌어도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는지?
잘생겼지만 능력 없는 대학 동창 A와의 해프닝.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A를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멀쩡한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대학 때의 A는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총학생회 사무실에만 은둔하는 운동권 학생이었고, “투쟁!”이란 말을 빼면 말이 나오지 않는지 말끝마다 ‘투쟁’을 외쳤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광고대행사에 다닌다며 명함을 건네는 A를 보니, ‘여자친구가 있나?’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다. 아마 대학 동창회에서 옛 애인을 만나거나 짝사랑의 상대를 만난 여자들은 대개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결혼한 여자라도 말이다. 다행히도 그는 싱글이었던지라, 나는 며칠 후 “술이나 한 잔 하자”며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분위기 좋아지면 한 번 자지, 뭐’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나는 A에게 다시 한 번 놀랐다. 서른을 넘긴 그의 집이 마치 대학생의 하숙방처럼 초라했기 때문이다. 해가 들지 않는 지하방에 살았던 A는 보풀이 가득 돋은 이부자리에 튜브를 베개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키스를 하고, 애무를 하고, 오럴 섹스를 해주었지만, 나는 그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제대로 느낄 수도 없었다. 그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건 머릿 속으로 ‘아, 이건 아니야. 나이가 30대 중반이나 돼가지고 이런 곳에서 남자와 잘 수는 없어. 별 다섯 개 호텔은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서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결국 그가 나에게 그의 페니스를 쥐어주었을 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 너랑은 도저히 안되겠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던 것. 차마 “너희 집에서는 못하겠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처음 만난 남자가 나를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장소로 이끌어 원 나이트 스탠드에 이른 적도 있다. 파주에 사는 B는 새벽 4시에 나를 논현동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재워주세요”라고 졸라댔다. 첫 만남에 집에 들이는 게 내키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요”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는 “그럼, 아침까지 같이 있어주면 안돼요? 파주까지 너무 멀어서 갔다가 오지는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서 택시 기사에게 “아저씨, 00 호텔로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별5개 호텔이었던 그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와 잘 거라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스위트룸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안잘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에 별다섯개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리는 남자에게 ‘전 그럴 생각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양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스위트룸만큼 대접받은 기분이 들었다. 선수였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No’라고 선언하고 돌아설 수 있는 여자의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평소 섹스에 무관심했던 여자라도 로맨틱한 분위기에는 약해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집을 떠나 호텔로 섹스 여행을 떠나는 것이 소홀해진 연인과 부부 사이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반드시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파크하얏트 호텔은 룸 인테리어는 그다지 감각적이지 않지만 두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최고급 자쿠지가 매력적이어서 욕실에서 에로틱한 분위기를 달구는 데 그만이고, 하얏트호텔은 통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여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곳이다. W호텔에는 침대에서 화장실과 샤워실이 창을 통해 보이는 구조로 된 룸이 있어서 자극적이고, 무엇보다 아침 식사가 그만이다.
사실 그녀와의 첫 섹스엔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이 효과적이지만, 오래된 연인 사이에는 5성급 호텔보다 모텔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천장에 거울이 있는 모텔, 그네 혹은 체위 바꿔주는 러브체어가 있는 모텔 등이 훨씬 자극적이지 않을까. 수원 조아텔의 스위트룸은 하늘이 뚫린 야외 온천이 딸려있어서 별을 보며 목욕을 할 수 있는데, 나 역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 이런 정보들을 어떻게 아느냐고? 인터넷 검색창에 ‘모텔’을 쳐보라. 기대 이상의 쏠쏠한 정보가 수없이 쏟아져 나올 테니 말이다. 그저 그녀가 좋아하는 취향의, 혹은 당신이 시도해보고 싶은 모텔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단, 그녀와의 분위기를 달굴 와인은 필수 준비물이니, 잊지 마시길!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처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