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5공 황태자’ 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의 돈 178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H 대 무용과 전 교수 강 아무개 씨(여·48)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심의 징역 4년 6월보다 6개월 감형된 형량이다. 강 씨는 2001년 6월부터 2007년 2월까지 박 전 장관으로부터 입금을 부탁받고 받은 돈 178억여 원을 76차례에 걸쳐 인출한 혐의로 지난해 7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강 씨가 박 전 장관이 맡긴 돈으로 부동산, 고가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는 등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고, 박 전 장관에게 입힌 손해를 대부분 회복하지 못해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강 씨가 횡령한 돈의 일부를 박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쓰기도 했으며 박 전 장관이 자신의 돈이라는 것을 숨기고 세금을 줄이기 위해 강 씨에게 돈을 맡긴 측면도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번 선고에서 강 씨가 횡령한 돈 액수를 178억 4900만 원에서 163억 원으로 산정했다. “1심에서 강 씨가 횡령했다고 판단한 돈 중 일부는 박 전 장관이 별도의 자금을 주면서 보관을 부탁한 것이 아니라 이미 횡령해서 자신의 오빠 등의 계좌에 입금해 놓은 것이기에 따로 횡령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박 전 장관이 강 씨를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 사건은 본의 아니게 박 전 장관의 비자금 의혹으로 번지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핵심은 박 전 장관이 강 씨에게 맡긴 거액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태우 정부 시절 ‘황태자’로 불리면서 막후 실세로 통했던 박 전 장관이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비자금일 것이란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박 전 장관의 비자금 파문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이 돈은 결국 권력형 비리로 부정축재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며 “최근 미국 뉴욕, LA 등지에 부정축재한 것으로 보이는 출처불명의 재산이 수조 원대에 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돈은 마땅히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의 국회 보좌관을 지낸 A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8~89년 당시 박 전 장관은 청와대 정책보좌관 겸 국회의원이던 권력 실세로, 선거 때마다 H 그룹, S 그룹, D 그룹, L 그룹 등 대기업들이 60~70억 원씩 싸들고 찾아왔다”고 폭로해 의혹을 증폭시킨 바 있다. 박 전 의원의 비자금 관리인은 최소 10여 명으로, 가·차명 계좌만도 100여 개에 이른다고 주장한 A 씨는 또 “박 전 장관이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두세 번씩 철저히 세탁할 것을 지시했다”며 “이번 소송 당사자인 무용과 K 교수와 전직 은행지점장 서 아무개 씨 외에도 여러 명이 수 억에서 수십억 원씩 차명계좌를 운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도 ‘1000억 원대 박철언 비자금’ 의혹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이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