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투기 관련 불법 담합 행위 의혹을 제기한 남성이 제시한 건축물대장 총괄표제부와 탄원서. | ||
경기도 파주의 한 임야에 공장 허가건을 둘러싸고 땅을 관할하는 군부대와 해당 지자체인 파주시청 측이 불법행위를 묵인하고 있다는 게 이 남성의 주장이었다. 이 남성은 또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던 총제적인 의혹들을 관련 수사기관에 수차례 고발했음에도 담당 수사관들은 고소인 진술조차 받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남성은 땅 허가를 둘러싼 불법행위 의혹과 자신이 당한 협박사건을 밝혀달라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현재 이 사건은 대검찰청으로 이첩된 상태다. 도대체 어떤 사연일까.
논란이 되고 있는 땅은 파주시 교하면 산남리 산 58-2번지 일대 임야 3만3719㎡(1만 200평)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과거 이 땅의 소유자였던 김 아무개 씨(54). 김 씨는 1988년 여름 이 땅을 K 씨와 함께 반씩 공동매입했고, 각자의 부인 앞으로 소유권 이전을 마쳤다. 하지만 이 땅은 투기지역·군사시설 보호지역·산림보존지역 등으로 묶여 있어 일체의 개발행위가 금지된 땅이었다.
김 씨는 이 땅에 농산물 건조장이나 버섯 재배장 등을 지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위의 이유로 허가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 용도로도 쓸 수 없는 땅을 오랫동안 부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던 김 씨는 2004년 10월 공동매입자인 K 씨로부터 땅을 팔겠다는 연락을 받고 같이 팔기로 결정한다. 이에 김 씨는 K 씨 측이 소개한 법률사무소 사무장의 주관하에 A 씨에게 땅을 13억 3000만 원에 팔았다. 사무장은 계약완료 후 매매 계약서와 자금정산 내역서를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했으나 김 씨는 자금정산 내역서만 전달받았다. 정상적으로 모든 계약이 완료된 것으로 믿은 김 씨는 이후 이 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2005년 5월경 김 씨는 모처로부터 “그 땅이 현재 소유권 이전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등기 전매가 진행 중이며, 토지분할 및 공장 인허가 신청이 등기부등본상 소유주였던 2인(김 씨 부인과 K 씨 부인) 명의로 완료된 상태”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달받았다. 등기부등본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김 씨는 즉시 사무장에게 따지고 해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김 씨는 할 수 없이 당초 계약자였던 A 씨에게 왜 소유권 이전이 안 되고 타인에게 예고등기가 돼 있는지와 4명에게 분할돼 수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이유 등을 따졌다. 특히 김 씨는 그토록 애를 썼어도 건축 허가가 나지 않던 땅에 매매 계약 직후에 공장 건립이 허가된 데에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에 A 씨는 불법행위임을 인정하며 금전적인 회유를 시도했으나 양자간 금액차 때문에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이들은 “더이상 문제삼으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 가족까지 해코지 하겠다”며 협박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허가 주체인 군부대와 파주시청에 해명을 요구하고 관련자들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이 일 때문인지 몰라도 김 씨는 올 5월 말쯤 피고소인 측에서 보낸 3명의 장정들에게 야밤에 불려나가 “다 끝난 일 갖고 왜 이렇게 끈질기게 악질을 떠냐”며 심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김 씨는 땅 매매를 할 당시 매입자와 근저당 설정자들이 군부대 등에 공장건립 허가와 관련 사전작업을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정상적인 계약을 맺고 소유권을 이전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 후 마치 짜맞추기라도 한 듯 예고등기 및 근저당이 설정된 것과 무려 십수 년 동안 허가가 나지 않던 땅에 공장 건축 허가가 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해명을 요구하는 자신에게 이들이 협박을 했다는 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특히 이 무렵에는 군부대 관할로 돼있는 파주의 몇몇 땅에 대해 공장설립 등 군부대 측과 교섭을 벌이는 전문 브로커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었다.
그간 김 씨는 2005년 여름부터 총 3차례에 걸쳐 법무사 사무장과 계약자인 A 씨, 각 필지별 근저당 설정권자 등을 포함한 10여 명을 부동산투기 및 세금포탈, 공갈협박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담당 수사관들이 수사진행은 고사하고 아예 고소인 진술조서조차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가 수차례 방문해서 고소인 진술을 하겠다고 했지만 경찰 측은 ‘이 건은 우리 머리 위에서 다 이뤄지고 결정난 일인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고소고발 이후 김 씨는 공장 허가 경위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파주시청에도 수차례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파주시청 측은 “당사자가 아니면 어떠한 사항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군부대 측으로부터도 공장 허가 경위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문제의 땅은 애초 58-2번지에서 368-4번지로 분할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 368-7~11번지로 분할된 상태였다. 그리고 368-7번지, 368-13번지에는 대지면적 6767㎡ 규모의 임야에 공장 용도의 건물 5동이 들어서 있었다.
공장허가가 난 후 땅값은 폭등했다. 개별공시지가 확인서에는 2004년 ㎡당 1만 1800원이었던 이 땅은 2008년 ㎡당 4만 9900원이 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문제의 땅은 (공장 허가 후) 엄청 올랐다. 2009년 현재 공장이 들어선 부분은 3.3㎡당 35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제의 땅에 공장이 5동이나 들어서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군부대 측이나 파주 시청 측에서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서로 떠미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9사단 측의 한 관계자는 10월 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허가 경위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지자체에서 심의 신청이 올라오면 군부대에서는 그 서류를 토대로 군사협의를 거쳐 군 작전상 이상 유무만을 따지는 말 그대로 작전상 검토만 한다. 부동산의 실제 소유주가 누구이며 매매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 땅에 건축행위가 가능한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군에서는 실질적인 검토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파주시에서는 “문제의 부동산은 군사보호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군협의에 우선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10월 7일 기자와 만난 파주시청의 한 관계자는 “군에서 먼저 가부를 결정해서 우리 측에 통보가 오면 우리는 산지관리법 등에 의거해 처리할 뿐이다. 그 땅에 공장이 들어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씨가 이 땅을 소유하고 있을 무렵엔 건축허가가 왜 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허가신청 서류조차 들어온 사실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그동안 김 씨가 공장건축 허가 사유와 관련해 수차례 답변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파주시청 측은 “민원이 들어오면 검토 후 반드시 회신을 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김 씨로부터 그런 민원을 받은 사실이 없고, 남아있는 자료도 없다”고 말했다.
파주시 한 임야의 공장허가 경위를 둘러싸고 수년째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의 진상은 과연 무엇일까. 재수사 의지를 피력한 검찰이 뒤늦게나마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