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씨가 기자에게 보낸 편지들. | ||
놀라운 사실은 여성 재소자들이 수용된 곳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여자 감방도 철저한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으며 오히려 남자 감방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여성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악질적인 음해와 루머, 따돌림, 기상천외한 사기행각 등이 대표적인 예. 여자 감방, 그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현재 수감 중인 K 씨는 기자에게 “징역살이 자체보다 더 힘든 건 감방을 장악한 동료 재소자들의 악질적인 괴롭힘”이라며 “이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K 씨가 기자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감방 안에서 동료들끼리 싸우다가 상처와 생채기를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시비를 걸거나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는 재소자로 인해 다른 재소자들의 불안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한다. 또 같은 동료들 간에도 강자가 약자를 마치 하녀 부리듯 한다고 한다.
K 씨는 서신을 통해 “감방 안에서 강자는 약자를 철저하게 지배한다. 외부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같은 재소자 간에 벌어진다. 감방은 교도소 내에선 또 다른 인권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특히 여자감방 내에서는 동료의 이간질과 음해로 한순간에 왕따를 당하고 ‘인간말종’으로 몰리는 일이 적지 않다. 졸지에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고 창녀, 꽃뱀, 거렁뱅이, 마약중독자, 사기꾼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힘없는 재소자들은 동료 재소자들의 괄시와 모멸감 속에서 인간취급도 받지 못한다. 또 영치금이 없거나 구매물을 사지 못할 땐 설거지와 화장실 청소는 물론 동료들의 속옷까지 일일이 세탁해야 한다”고 폭로했다.
K 씨는 이 같은 일들을 ‘징역 속에 또 다른 징역’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러한 괴롭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K 씨는 “일부 ‘힘있는’ 여성 재소자들이 동료를 상대로 돈을 뜯어가거나 사기를 치는 등 교도소 내에서도 범죄가 버젓이 재생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동료에게 사기를 당해 영치금 또는 재산을 날리거나 어렵게 마련한 변호사 선임비까지 한순간에 뜯기는 일이 적잖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K 씨는 일례로 자신이 동료에게 당한 어처구니없이 사기사건을 털어놨다. 올 3월 감방 동료 A 씨는 “형사사건을 변론해줄 변호사가 필요한데 변호사 선임비가 없다”며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K 씨는 그의 이런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어느날 A 씨가 편지 한 장을 보여주면서 K 씨에게 “도망 다닐 당시 분당에 보증금 1억에 월세 350만 원에 살았다. 그런데 구속되는 바람에 월세를 못냈더니 주인이 밀린 월세와 관리비를 제외하고 5000만 원을 보내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돈을 받으면 갚겠다며 변호사 선임비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K 씨는 영치금 50만 원을 박 아무개 변호사 통장으로 입금해줬다고 한다. K 씨는 또 비슷한 상황에 놓인 B 씨에게도 20만 원을 입금해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A 씨와 B 씨는 돈을 갚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K 씨에 대한 온갖 악성 루머를 퍼뜨리면서 음해했다.
“이들은 한패가 되어 내가 찜질방에서 지냈던 거렁뱅이며 교도소 내에서 펜팔로 남자를 꼬인다고 떠들어댔다. 또 내가 남자를 유혹해 마약을 먹여 돈을 뜯어내는 질 나쁜 사기꾼이며 남자관계가 너무도 문란해서 나가면 언제 칼침을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등 악소문을 퍼뜨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간질을 해서 나와 동료들 간에 싸움을 붙이고 따돌림까지 당하게 만들었다”는 게 K 씨의 주장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K 씨 혼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재소자 L 씨 역시 힘센 감방동료의 모함과 이간질 속에서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L 씨가 기자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C 씨는 같은 방 식구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 외에도 이간질하는 것을 즐겼는데 한 사람을 생매장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평소 못마땅해하던 D 씨를 내쫓아야겠다고 생각한 C 씨는 방 사람들을 선동한 뒤 자신이 자술서를 작성, 동료들의 사인을 강제로 받아내 결국 D 씨를 쫓아냈다고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이후 C 씨가 D 씨에게 “이 일은 모두 L 씨가 꾸민 짓”이라고 이간질을 했다는 점이다. 그 후에 L 씨가 당해야 했던 고통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영치금이 없어 D 씨 눈밖에 났던 L 씨는 이후 설거지, 청소, 속옷 빨래 등을 하면서 하녀처럼 살아야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흥미로운 것은 감방 내에서 ‘권력’을 쥐고 재소자들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의 특징이다. 몇몇 여성 재소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남자 교도소처럼 안락한 수감생활을 하는 일명 ‘범털’이 여자 교도소에도 존재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는 E 씨. L 씨에 따르면 E 씨는 자신을 ‘1000억 원이 넘는 납골당과 필리핀 현지에 카지노를 갖고 있는 재력가’라고 떠벌리고 다닌다고 한다. 강남 모 유명호텔의 대주주이고 여러 개의 주유소와 전국 각지에 수 만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입소문을 내고 있는 E 씨는 자신의 막강한 재산내역을 무기로 동료들의 위에 군림하는 동시에 담당 사소(수용시설에 밥과 온수 등을 날라다주고 인원체크, 서류전달, 청소 등의 잡다한 일을 하는 인물로, 재소자와 교도관들을 수시로 접하다 보니 교도소내 소식 및 사건에 정통함)를 회유해 온갖 편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L 씨는 “E 씨의 회유에 넘어간 담당 사소는 아침마다 E 씨에게 고구마와 삶은 계란을 가져다주고 얼음, 고추, 김, 무생채, 심지어 김치라면까지 만들어다 바쳤다. 담요와 침낭도 원하는 대로 제공했다. E 씨는 틈틈이 뇌물을 줘 사소를 매수했고, 사소는 E 씨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고 폭로했다.
또 다른 수용자 P 씨는 감방 내 권력을 지닌 일부 재소자들의 범죄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동료 재소자들의 구매품을 빼앗거나 바깥사람에게 위임장을 부탁한 뒤 돈을 가로채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등 지능적인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감방 안에서는 물품교환과 구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는 문제 없지만 사실상 눈속임에 불과할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교도소 직원들은 감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한다. 이와 관련 교도소 관계자는 “온종일 방 안에서 같이 생활하지 않는 한 모든 일을 다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런 일들은 교도관들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설령 피해자가 어렵사리 교도소 측에 알린다 해도 결과가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방안의 다른 재소자들이 보복을 우려해 침묵하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몰려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기자에게 제보한 재소자들은 그간 몇 차례 민원을 제기하고 면담을 요청해도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어쩌다 어렵게 면담을 해도 ‘그냥 참고 살라’는 형식적인 말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교도소 내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누설하면 불이익이 돌아올 게 뻔하지만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폭로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