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32세의 K 씨는 결혼 얘기만 나오면 심란해진다. 몇 개월 만나다가 결혼 얘기가 오간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K 씨의 경제상황이 넉넉지 못하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미국에서 유학까지 하고 있어 잘 사는 줄 알았다”면서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 후로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의 상황에 위축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애인을 만나게 되었다. K 씨보다 세 살 아래인 그녀는 수십억 재산을 가진 집안의 딸로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재원. 소위 말해 ‘퀸카’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경제적 불안정으로 실연당한 경험이 있고, 그녀의 경제력에 기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많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내게는 당신의 미래가 최고의 조건”이라고 한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사랑할 용기가 생겼다.
♥ 조건이 결혼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은 경제력을 따지고, 남성은 외모를 따진다고들 한다. 요즘은 이혼이 많기 때문에 결혼을 두 번 세 번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결혼할 때 이혼할 것을 미리 염두에 두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다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린다. 그러니 조건을 따지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조건이라는 건 좋은 것이 나쁜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것이 결혼상대를 선택할 때 결정적인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학벌이나 직장도 중요하다. 경제력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집안이 부유하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작 좋은 인품을 갖추지 않았다면, 목표의식이 없다면, 그래도 결혼할 것인가.
직장이란 것이 요즘처럼 퇴직연령을 꽉 채우기 힘든 시대라면 20~30년 이상 다니기 힘들 것이고, 부모가 언제까지 뒤를 봐줄 수도 없다. 돈도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데, 늘 손에 쥐고 있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러면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 그 자체다. 그 사람의 인품, 비전, 목표의식 같은 부분을 보지 않은 채 조건만 본다면 불행한 결혼생활을 자초하는 셈이다.
♥ 서로 덕 보자는 마음이 강하면 다툼이 일어난다
조건을 따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 결혼해서 좀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 덕 좀 보려는 심산인 것이다. 평생 딱 두 번 주례를 서셨다는 성철 스님의 주례사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로 덕을 보자는 마음으로 결혼하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 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결혼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 분하고 살면서, 저 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덕 좀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지 되지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결혼이 자선사업은 아니다. 성철 스님 말씀처럼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뭔가 덕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한다면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게 됐을 때 결혼생활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결혼은 조건이 아니라 사람과 하는 것이다.
좋은만남 이웅진 선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