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해운대>에서 지진해일이 일어나는 장면. | ||
한국에도 지진은 온다. 지난해 한반도에서는 총 60여 차례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지진 관측 이래 가장 많은 횟수다. 이 가운데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유감지진(규모 3.0 이상)은 총 9회 발생했다. 규모 3.0의 지진은 진앙(지진이 발생한 지하의 진원 바로 위에 해당하는 지표상의 지점, 진원지라고도 한다)과 가까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했던 지진 중 최고 강도는 5월 2일 안동지진으로 규모 4.0을 기록했다. 4.0은 탁자가 흔들리되 탁자 위의 물건이 넘어지진 않을 정도라고 한다.
지난 1월 20일 기자와 만난 기상청 지진감시과 유용규 사무관은 “리히터 규모가 1.0 커지면 지진의 힘은 약 32배 커진다”며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 지진은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컸던 안동지진의 규모 4.0의 약 2만 7000배 강도이므로 어마어마한 것이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지진을 지역별로 살펴보자. 경북(대구 포함)은 연평균 약 10회, 전북이 3회, 경남(부산 포함) 충남(대전 포함)에서 각 2회, 서울·경기·전남(광주 포함)은 각 1회 정도 발생한다. 위 관계자는 “대구·경북에서 지진이 잦긴 하지만 규모가 큰 지진은 해상에서 일어나 내륙까지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했고, 내륙에서 일어난 지진은 규모 2.0 안팎이라 큰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지진의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현재 소방방재청은 ‘지진재해 대응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 특정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피해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18일 소방방재청이 위 시스템으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서울 남서쪽 지하 10㎞ 지점에서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서울 41만 9000여 명, 경기 20만 6000여 명, 인천 4만 5000여 명, 충남 199명, 충북 73명, 강원 65명, 대전과 전북 각 1명의 사상자를 낼 것으로 추정됐다고 한다.
또한 19일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아파트 등 일반 건물 62만 8325채 중 내진설계가 반영된 것은 6만 1919채에 불과해 내진설계가 안 된 서울시 아파트가 10곳 중 9곳인 것으로 나타나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예상된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해 규모가 약한 지진이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지진 안전지대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대만 중국의 경우 지각판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그 피해도 상당하다. 우리나라의 최근 10년간(1999~2008년) 연평균 지진발생 횟수는 41회(이 중 규모 3.0 이상 9회)임에 반해, 일본과 중국은 5.0 이상의 지진이 각각 50회, 20회씩 발생했다. 규모 큰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1978년에 이미 지진대책특별법을 제정해 내진설계를 비롯해 구조 체계를 정비했으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30년 늦게 건축법에 구조내력(構造耐力)기준을 정해 지진대책에 미흡했음을 알 수 있다.
계기지진을 관측한 78년부터 현재까지 31년간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의주, 홍성, 쌍계사 지역 등에서 5회 발생했다. 그중에서 78년 홍성에서 발생한 지진이 한반도 역사상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경우로 꼽힌다. 1978년 9월 16일 새벽 2시경 속리산 부근에서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는 담장이 무너지는 등 약간의 피해만을 입었으나 홍성 지역에서 10월 7일 오후 6시경 규모 5.0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학교, 교회 등 건물 벽에 금이 가는 피해가 났다. 최근에도 이에 버금가는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으로 관측됐다. 2007년 1월 20일 강원 오대산 지역에서 일어난 규모 4.8의 지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당시 학교 등 건물 담장이 무너져 인명과 재산에 미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
20세기 이후 발생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은 1960년 5월 22일 남미 칠레 연안에서 발생한 규모 9.5의 지진이다. 당시 지진해일을 동반한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칠레와 태평양 연안에 살던 주민들 2200여 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에서 관측된 지진해일은 네 차례였는데 이는 모두 일본 근해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에 동반된 것이었다. 1983년 5월 26일 일본 아키다현 서쪽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지진으로 우리나라는 동해안에 5명의 인명피해와 선박, 건물 등 3억 7000만여 원의 시설피해를 입은 바 있다.
기상청 유용규 사무관은 “큰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동(지진으로 일어나는 지면의 진동)은 길어야 1분 이내이며 강한 지진동도 지속 시간이 15초를 넘지 않는 것이 보통이므로 멀리 대피한다는 마음보다는 신속하게 주변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대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상청에서는 지진정보를 신속히 전파하기 위해 지진 조기 경보 체제를 구축해 현재 300초 이내 전파체계를 2015년까지 50초 이내, 2020년까지 10초 이내로 단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이티의 지진피해가 엄청나게 컸던 것은 지진에 취약한 지역임에도 대비가 전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땅 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로 알려져 있지만 영원히 대지진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딱 한 번의 지진이 거대도시를 폐허로 만들 수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