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학력고사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일요신문>은 설날호 특집으로 과거 ‘전국 수석’으로 명성을 날렸던 ‘천재’들의 최근 근황을 살펴봤다. 기자는 대다수 수석들과 직접 연락을 취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들은 출신 고교, 대학 동문회, 지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근황을 들었다. ‘전국 수석’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사회에 뛰어든 사람들의 그날 이후를 취재했다.
우리나라 대학 입학시험 제도는 다양하게 변해왔다. 광복 직후 대학별 단독시험, 대입 자격 국가고사를 거쳐 1969년 예비고사가 처음 등장했다. 이는 본고사에 앞서 보는 시험이었는데 여기서 일정 점수를 넘어야 각 대학의 본고사에 응시할 수 있었다. 예비고사 수석이 주목받은 이유는 특정 대학 수석이 아닌 ‘전국 수석’이란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1981년부터는 본고사가 폐지되고 학력고사를 시행했는데 처음에는 ‘선시험 후지원’ 제도로 치러졌다가 나중에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바뀌었다. 지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년부터 시행됐다.
예비고사와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한 인문계 학생들의 대부분은 서울대 법대를 선택했고, 현재 법조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73학년도 예비고사 수석 허익렬 씨, 1980학년도 수석 김기영 씨, 1981학년도 예비고사 수석 오관석 씨 등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현재 김&장에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1981년에 처음 치러진 1982학년도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다. ‘제주도 천재’로 불렸던 원 의원은 1992년에 치러진 사법고시에서도 당당히 수석을 차지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원 의원은 서울지방검찰청-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지적재산권 분야 전문 변호사로 활약했다. 2000년 5월 16대 총선때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원 의원은 어느덧 3선 중진 반열에 올라 있다.
1983학년도 수석은 서울 중앙지법 부장판사 홍승면 씨다. 그는 세종증권 매각 비리, 국세청 직원 그림 로비 의혹 사건, 박연차 정·관계 로비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의 심리를 맡아왔다. 또 지난 1월 18일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 회원 7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평가에서 최고 법관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1984학년도 학력고사 전국 수석 장순욱 씨는 수원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다 현재 해외 연수 중이다. 1985학년도와 1986학년도에 인문계 수석을 차지한 정준화 씨와 서승렬 씨 역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각각 서울행정법원 판사와 서울중앙법원 판사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수석들 중에는 비법조인들도 적지 않았다. 1974학년도 예비고사 전국 수석 오내원 씨, 1978학년도 수석 박석원 씨, 1990학년도 학력고사 수석 양진호 씨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오 씨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박 씨는 82년 금성사(현 LG)에 입사한 뒤 현재 LG전자 부사장으로 북미지역본부를 맡고 있다.
1986학년도 학력고사 수석 오석태 씨 역시 서울대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그의 부모님은 법학과에 지원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소신껏 경제학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오 씨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 씨티은행에서 12년간 경제 전문가로 활약하다 지난해 8월 한국스탠다드차타드제일은행(SC제일은행)의 기업금융총괄본부 글로벌 마켓 총괄본부의 이코노미스트(경제전문가)로 선임됐다.
1975학년도 예비고사 수석 송기호 씨는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하는 의외의 결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지난 2월 3일 기자와의 메일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대전에서 지역 연합 서클 활동을 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판·검사나 의사 모두 고통 받는 사람들을 평생 대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인문학 가운데 국사를 택했고, 지금도 연구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연을 밝혔다. 그는 1988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장을 맡고 있다.
1976학년도 수석 임희근 씨는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출판 기획 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대표로 해외 도서 번역에 힘쓰고 있다.
1981학년도 여자 수석 한승미 씨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0년도 이전까지는 이공계의 의대 편향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의대를 지원한 전국 수석 합격자는 1977학년도 수석 신상훈 씨가 유일했다. 오히려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1970학년도 예비고사 수석 임지순 씨, 이듬해 수석 오세정 씨, 1985·1986학년도 수석 이미령 씨와 이준걸 씨 등 네 명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지원했다. 임 씨와 오 씨는 현재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국 모의고사에서 줄곧 자연계 수석을 차지했던 이미령 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지원한 전국수석 합격자는 모두 3명이다. 1972학년도 예비고사 수석 한태숙 씨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원 공학부 전자전산학과 교수로, 1987년 수석 김영용 씨는 현재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을 ‘수재형이 아니라 노력형’이라고 밝힌 1988학년도 수석 이일완 씨는 대우전자연구소에 근무 중이다. 1984학년도 학력고사 자연계 남자수석 송현주 씨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아방송대학교 음향제작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9학년도 수석 이종진 씨는 서울대 화공과로 진학한 뒤 에스오일에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계 수석 합격자 여성들은 모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1982·1983·1985·1986학년도 자연계 수석을 차지한 오미숙, 김현아, 이희선, 김영아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현아 씨는 2월 5일 기자와의 메일 인터뷰에서 “질병이 생기는 원인과 임상에 대한 관심으로 의대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류마티스 내과의다. 이희선 씨는 2월 4일 기자와의 메일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나간 과학경시대회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 기초과학 쪽으로는 적성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의학 쪽에 관심이 많았다”며 자신이 한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강남미즈메디병원 산부인과 진료과장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담당하고 있다. 김영아 씨는 현재 유앤미클리닉에서 산부인과 원장을 맡고 있고, 오미숙 씨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간에 진로를 바꾼 수석들도 있었다. 1983학년도 자연계 수석 서영석 씨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바로 개원해 현재 안양에서 경희희망한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재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한 서 씨는 구속과 수감 등으로 물리학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의 도움으로 대학을 간신히 졸업한 서 씨는 이후 학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며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1986학년도 전체수석 이준걸 씨는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박사 학위를 수료한 뒤 귀국해 현재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수학 교육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2월 2일 기자와 만난 71학년도 수석 오세정 교수는 “별종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1등은 매년 누군가 하기 마련이다. 인격보다 간판, 타이틀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될 것이다”고 말했다. 75학년도 수석 송기호 교수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으니 일단 내 역할을 학계에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그것이 내가 연구생활을 해온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83학년도 여자 수석 김현아 씨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 남들이 뭐라 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85학년도 수석 이희선 씨는 “수석은 별로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험을 거쳤고 그 중 한 가지를 잘 봤을 뿐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제주도 천재' 원희룡 의원 전화인터뷰
“닥치는 대로 읽다 공부 비법 터득”
―학창시절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소개한다면.
▲엄청난 양의 난잡한 독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릴 때 집에서 책방을 했었다. 당시 장르 구분 않고 거의 모든 책을 섭렵했는데 그때 독서의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나는 공부할 때 속독, 정독, 발췌독 모두 이용했다. 내용이 익숙해질 때까지 무조건 속독으로 시작했다.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할 무렵 내용이 완벽히 이해될 때까지 정독을 했다. 그 후 연결되는 부분들을 뽑아 여러 각도로 조립해 봤다. 책을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효과적일지 항상 고민해봤다.
―수석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나는 해마다 나오는 수석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내가 대단한 천재인 것도 아닌데 주위에선 나를 별난 사람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1등이든 100등이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비고사, 학력고사 부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공부하는 학생들의 공부하는 양이나 노력이 우리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에 맞는 교육 체계를 고민하며 변화를 시도해야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현 교육제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교육제도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이 인정받고 그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성적을 한 줄로 세워 능력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문제다. 논술 역시 판에 박힌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원리를 깊이 이해하고 문제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창의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