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벌이가 일정하지 않았던 남편이 근근이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살림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생활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남편 김 씨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부인과 같은 지적장애인 장 아무개 씨(32)였다.
사기전과가 있던 남편 김 씨는 손쉽게 지적장애인 장 씨를 꾀어내 수천만 원의 돈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김 씨의 수법은 간단했다. 남편 김 씨는 지적장애인 장 씨에게 자신의 부인도 지적장애 3급이라며 접근했다. 장 씨의 환심을 산 김 씨는 장 씨를 꾀어내 장 씨의 주민등록초본과 통장 등을 받아냈다. 김 씨는 장 씨의 초본과 통장을 들고 대부업체를 찾았다. 장 씨의 신용등급으로는 한 곳에서 큰돈을 대출받을 수 없었다. 김 씨는 대부업체 4곳을 돌아다니며 장 씨의 명의로 27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장 씨 명의로 빌린 돈이 바닥을 보이자 김 씨는 다시 한 번 추악한 범행을 계획했다. 김 씨의 다음 범행대상은 충격적이게도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든 자신의 어린 부인이었다.
김 씨의 범행은 계획적이었다. 김 씨는 지난 5월부터 스마트폰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성매매 의사를 가진 남성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관심을 보이는 남성과 인근 모텔에서 접선한 다음 현금 10만 원을 받고 임신한 부인에게 강제로 성매매를 시켰다. 부인은 임신 6개월로 접어든 상황이었다.
남편 김 씨의 범행은 더욱 대담해졌다. 남편 김 씨는 렌터카를 빌린 다음 부인 A 씨를 태워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채팅을 통해 성매매를 요구하는 남성이 전국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채팅을 통해 고객을 찾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부인에게 직접 호객행위를 시키기도 했다. 만삭이 다 돼가는 A 씨는 밖으로 나가 불특정다수의 남성들에게 접근해 성매매 의사를 물어봐야 했다. 성매매는 주로 남편 김 씨가 렌트한 차 안에서 이뤄졌다. 성매매가 싫다고 의사를 표현하는 A 씨에게 돌아오는 것은 남편의 욕설뿐이었다. 남편이 무서웠던 A 씨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성매매를 원하는 고객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은 한 달 내내 이어졌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만삭의 A 씨에게는 견디기 힘든 생활이었다. 남편이 무서워 신고를 망설이던 부인 A 씨는 드디어 용기를 냈다. A 씨는 진주에 머물던 당시 “남편이 임신한 나에게 강제로 성매매를 시키고 있다”고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적장애를 가진 A 씨 혼자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A 씨의 부모는 A 씨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A 씨의 사연을 알게 된 A 씨의 지인이 지역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순천장애인인권센터 정영섭 소장은 “이미 남편 김 씨가 재판에 넘어간 상황에서 A 씨의 지인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A 씨가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로 성매매를 하게 됐는데 행여나 보복이 있을까 신고를 하고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순천장애인인권센터는 진상파악에 들어갔다. A 씨는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의사표현이 비교적 확실했고 주장에도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순천장애인인권센터 등은 김 씨의 판결 선고를 앞두고 검찰이 구형한 징역 2년 6월에 대해 “자신의 의사표현이나 주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인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사람에게 너무 낮은 구형”이라며 엄한 처벌을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했던 부인 A 씨가 돌연 태도를 바꿨다. 부인 A 씨는 선고 재판을 일주일 남겨 놓은 시점에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A 씨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A 씨는 지난 10월 구속수감 중인 김 씨의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출산한 A 씨는 생활이 어려운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A 씨는 경제적으로도 혼자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를 출산했지만 남편의 부재가 이어지자 극심한 생활고가 현실로 다가왔다. A 씨의 시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어른들이 A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힌 A 씨는 주변의 설득에 차악을 선택했다. A 씨는 선고 판결을 앞두고 남편 김 씨를 용서해달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순천장애인인권센터 정 소장은 “단체에게 A 씨를 격리하는 등의 강제권은 없다. A 씨를 가해자의 지인들로부터 격리하거나 보호시설로 보내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이유다. 현재는 본인도 주변의 도움을 원치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A 씨는 3개월 전 아이를 출산해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8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4단독(판사 이대로)은 김 씨에 대해 징역 1년 4월(검찰 징역 2년 6월 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적장애를 가진 피해자 장 씨와는 김 씨가 합의했고, 김 씨의 배우자인 A 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판시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박재형 공보판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재판부도 고민이 많았다. A 씨가 직접 피해사실을 신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혼인신고를 하고 아이를 출산한 다음 시댁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며 “이번 판결에서 피해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A 씨가 매번 법정에 직접 나와 남편을 선처해 달라고 했지만 김 씨의 죄질이 나빠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번 판결의 형량이 낮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앞서의 정 소장은 “지적장애인들은 인권을 침해받거나 차별받는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지적장애인이 합의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적장애인의 특성과 전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 반복되다 보면 같은 피해가 또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