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아이들이 작은 방에서 잠든 사이 안방에서는 여느 때처럼 욕설 섞인 고함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혼하자 이혼해. 당신같이 무능한 인간한테 애들도 못 맡겨.”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김 씨가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이 한 마디에 황 씨의 눈이 뒤집혔다. 이성을 차리고 보니 아내는 자신에게 목이 졸린 상태로 늘어져 있었다. 황 씨는 목을 조르던 손을 내려 늘어진 아내의 몸을 흔들었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순간 많은 생각이 황 씨의 머릿속을 스쳤다. 자수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다고 시신을 어디에 암매장할 용기는 더 나지 않았다. ‘일단 시신을 숨기자’고 생각한 황 씨는 김장용 비닐봉투 두 개를 이용해 시신을 밀봉했다. 그리고 장롱을 열어 이불들을 꺼내 공간을 확보한 뒤 시신을 웅크린 상태로 눕혀 넣고 이불로 덮었다. 집에는 어차피 가족들 외에 왕래가 없기에 한동안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할 터였다.
다음날 아침 깨어난 아이들은 엄마를 찾았다. 황 씨는 “엄마는 이제 없다. 너희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얘기하고, “벌레가 나오니 안방 문은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엄마가 안방 장롱 이불 밑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른 채 아이들은 아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랐다. 김 씨를 찾는 가족들의 전화에도, 이웃들의 질문에도 같은 식으로 둘러댔다.
시신이 발견된 청테이프가 붙여진 장롱(위)과 시신의 냄새를 없애려 피운 모기향. 뉴스 방송화면 캡처.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비닐로 감싼 시신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악취가 나자 황 씨는 장롱에 청테이프를 붙여 밀봉했다. 그렇게 해도 새어 나오는 냄새는 매일 모기향을 피워 감췄다. 아이들과는 작은방과 거실에서 지냈고 안방문은 절대 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유독 따뜻했던 봄도, 길게 이어진 여름도 보냈다.
아내가 장롱을 나올 수 있었던 건 황 씨가 저지른 또 다른 범죄 때문이었다. 지난 11월 황 씨는 사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결국 구속됐다. 붙잡혀 가면서도 아이들보단 안방에 남겨둔 ‘비밀’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지난달 20일, 남겨진 두 조카를 돌보기 위해 황 씨의 형(47)은 집을 찾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들의 옷가지를 챙겨 데려가려고 안방에 들어가니 역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테이프를 자르고 밀봉된 장롱을 열자 비닐에 싸인 시신의 일부가 보였다. 이미 상당히 부패한 상태였던 터라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형 황 씨가 112에 신고하면서 아내 김 씨는 장롱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황 씨가 다른 범죄로 구속되지 않았다면 ‘죽은 아내와의 동거’는 언제까지나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경찰은 구속된 황 씨를 추궁해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 수사를 맡았던 대전 둔산경찰서 이성선 형사과장은 “아이들은 친가에서 생활하며 돌봄을 받고 있다. 황 씨는 남은 조사를 받고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