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까운 연인이나 부부라 할지라도 직접 보고서 말하기 어려운 은밀한 얘기들을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사진 파일 등을 통해 주고받는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섹스팅’이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이 행위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성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와 음란물을 제작·유포하는 것으로 섹스(sex)와 텍스팅(texing)의 합성어다. 섹스팅은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몰락 원인으로 거론되면서 이미 미국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섹스팅은 더 이상 미국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3월 7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이창훈 연구원이 수도권 중·고등학생 1612명을 설문조사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20%(323명)가 ‘섹스팅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섹스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중에는 자신이나 친구의 신체부위가 노출된 사진이나 속옷차림의 사진을 찍어보냈다는 응답이 21.9%로 가장 많았다. 음란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자위·성행위 장면을 촬영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청소년들이 섹스팅을 하는 이유는 ‘재미나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응답한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섹스팅에 대한 경험담이 올라온 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섹스팅이 일종의 성인식으로 여겨지고 있는가 하면 새로운 이성과의 교제를 시작하면 서로의 나체를 찍어 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시작한 섹스팅은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적잖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출 사진이나 동영상, 문자메시지 등이 텍스팅 상대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유포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남자친구나 친구들의 강요에 의해 섹스팅에 응하는 경우도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이로 인해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은밀한 사생활이 노출돼 왕따를 당했다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한 청소년 상담소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는 ‘섹스팅을 통해 주고받은 문자와 사진들이 친구들 사이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어 신경 쓰인다’ ‘문란한 아이로 이미지가 굳어져 힘들다’는 내용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섹스팅의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인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8년 신시내티에선 17세 소녀가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누드를 남자친구에게 보냈는데 남자친구와 헤어지자 그 친구가 홧김에 누드 사진을 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모두 전송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일로 또래 사이에서 놀림의 대상이 된 소녀는 결국 목을 매 자살했다.
또 지난해 말 플로리다주 탬파에서도 열세 살짜리 소녀가 남자친구에게 보낸 자신의 알몸 사진이 학교에 퍼지자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청소년들의 섹스팅 비율은 낮지만 개방된 성문화와 휴대전화 의존율 등을 감안해볼 때 안심할 수 없다. 특히 또래들의 행동에 쉽게 동조되는 청소년 집단의 특성을 고려할 때 섹스팅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