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직원들은 송년회에서 성희롱을 당한 수치스러운 기억 때문에 연말이면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MBC 종영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한 장면.
평소에 입지 않는 스타일이라 의상 대여까지 해야 했던 김 씨는 송년회에서도 한시도 편하게 있지 못했다. “생각보다 몸매가 좋다” “앞으로 그런 옷만 입고 다녀라” “ㅇㅇ씨(김 씨와 같은 부서 남자 직원)는 이런 후배 둬서 좋겠다” “회사 다닐 맛이 난다” 등 온갖 성희롱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고 억지로 무대 위에 올라 춤까지 췄다.
김 씨는 “남녀직원을 불러내 섹시댄스를 시켰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도 부끄러웠는데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진행자가 상품을 미끼로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춤까지 시켰는데 다들 말리기는커녕 술에 취해 ‘빨리 하라’며 재촉하기까지 했다. 결국 1등을 하지 못했는데 선배들이 ‘혼자 얌전한 적한다’며 야유를 보내 너무 속상했었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박 아무개 씨(여·28)는 송년회에서 말로만 듣던 몰래카메라를 당했다.
박 씨는 “간호사, 의사, 행정직원, 제약회사 관계자들까지 모여 송년회를 보낸다. 지난해에는 큰 술집을 통째로 빌려 송년회를 했는데 저마다 파티 복장을 갖춰 입고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일부 교수님들이 간호사들의 몸매를 찍어 의사 모임이나 지인들과의 채팅창에 올리는 걸 목격했다. ‘우리 애들 물 좋다’ ‘다리는 쭉 뻗었네’ 등 성희롱까지 하더라. 깜짝 놀라 수간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른 척하라’는 말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대놓고 간호사들을 성희롱하거나 심지어 신체적인 접촉까지 시도했다. 박 씨는 “예쁘장하게 생긴 간호사들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러브샷을 권하는 등 정말 진상이었다. 첫 송년회라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선배들은 욕을 하면서도 꾹 참더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그만두려했는데 송년회가 싫어 보너스도 포기하고 일찍 사표를 냈다”며 “병원에 남은 동기들은 벌써부터 송년회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