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말레나>의 한 장면. | ||
나이 마흔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선배 A의 충격적인 고백. “내 남자친구가 나보고 맛있대. 이런 칭찬 처음 들어봐”라고 말이다. ‘맛있다는 칭찬을 처음 들었다’는 여자는 숱하게 보아왔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A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충격이었다. A는 음담패설의 여왕으로, 섹스에 일가견이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남자가 G스폿을 잘 못 찾을 때는 베개를 써봐. 하나로 안 되면 두개를 써”라고 권해준 것도 그녀였고, “모텔을 왜 안가니? 내 친구가 그러는데, 남이 썼던 거라 좀 찝찝하긴 하지만, 러브체어가 완전히 끝내준대. 집에서는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걸 느끼게 된다나. 한 번 가보면 모텔 마니아가 될 거래”라고 말했던 것도 그녀였다.
A의 옆에만 있으면 대한민국 커플의 다양한 섹스 실태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속옷 때문에 헤어졌대. 아, 아래를 세트로 맞춰 입지 않았다고 남자가 헤어지자고 했다나?”라는 황당한 얘기를 들려주고 “여자들은 이상해. 연애 초기엔 겨털이니 속옷이니 한껏 신경 쓰다가도 알 거 다 아는 사이가 되면 엄마 팬티 입고 나가거든. 하지만 남자는 어디 그래? 연애 초기엔 속옷이 눈에 들어오나. 벗기기 바쁘지. 하지만 권태기가 되면 여자가 야한 속옷이라도 입어줘야 벗길 맛이 나잖아. 속옷에 신경 써야 할 때는 연애 초기가 아니라 권태기 때라고”라는 조언한 것도 그녀였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A는 섹스를 몸으로 즐기는 여자가 아니라, 입으로 즐기는 여자였다. 섹스 콤플렉스가 상당했던 A는 지금까지 사귄 남자에게 ‘불감증’을 오해받았고, 섹스 라이프가 원만하지 않은 탓에 남자와의 교제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섹스 경험은 많았지만 섹스를 잘할 수 있도록 제대로 연습할 기회는 없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A의 입담을 아는 남자들은 ‘알 거 다 아는 이 여자, 꽤 잘하겠는걸’ 하는 기대치가 있었고, 막상 A가 섹스에 재미를 못 느끼면 ‘뭐야? 나한테 만족을 못하나?’라고 자격지심을 느꼈으니, 연애가 오래가지 않을 수밖에. 그런데 지금의 남자친구 B는 달랐다. 입으로는 청나라의 기녀 못지않은 체위도 즐길 것 같은 A가 알고 보면 섹스를 부끄러워하는 규중처녀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 B는 A를 천천히 리드했다. ‘맛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무 반응이 없던 A가 뜨거운 입김을 토해낼 때까지 온몸을 애무하고, 또 애무했던 것. A의 몸이 활짝 열린 것은 당연한 일. 그 순간 A는 ‘맛있는 여자’로 거듭났다.
섹스를 말하는 것과 섹스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섹스를 적극적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섹스에 적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실 남자가 음담패설을 할 때, 진짜로 섹스를 잘하는 여자는 그런 얘기에 별 흥미가 없다. 오히려 섹스에 뭔가 콤플렉스가 있는 여자들이 섹스담을 적극적으로 받아친다. 섹스를 못하는 여자일수록 그것을 감추고 싶은 심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면서 남자의 심리를 하나라도 더 캐묻고 싶어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라. 음담패설을 잘하는 여자일수록 남자들에게 질문이 많지는 않았는가. “그런데 나 이건 궁금하더라”라고 시작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남자는 음담패설을 쿨하게 되받아치는 여자를 만나면 ‘저 여자, 알만큼 아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잘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섹스 칼럼을 쓰는 나 역시 ‘아무하고나 쉽게 하고, 잘하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 은근한 섹스 제안에 “어머나?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랍니다”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던지면, “아이, 왜 그래. 선수끼리”라고 말했던 남자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누나, 저는 경험이 없어요. 누나가 리드해주세요”라고 말한 남자는 또 얼마나 많았나.
하지만 나는 나를 ‘선수’로 치부하는 남자와는 섹스하고 싶지 않다. 나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은 남자와는 더더욱 자고 싶지 않다. ‘이 여자가 어떻게 하나’ 하고 지켜볼 것 같아서 애무를 할 때도 신경이 쓰인다. 반면 숫처녀를 상대할 때처럼 나에게 로맨틱하게 접근해주는 남자에게는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조심스럽게 스킨십을 시작하고, 섹스를 제안하는 데 공을 들이고, 정성스럽게 애무하고, 조심스럽게 삽입하는 남자와의 섹스는 얼마나 짜릿한가.
섹스를 할 때만큼은 여자의 섹스 스펙을 잊어주길 바란다. 여자의 나이, 여자의 성경험, 여자의 섹스 지식 등 모든 것을 잊고, 단지 처음 경험하는 여자를 대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그 순간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 ‘첫 남자’가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말을 듣게 될 테니까.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