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 ||
섹시한 도시, 뉴욕. 나는 지금 에로틱한 도시, 뉴욕에 있다. 뉴욕 거리를 걷다보면 서울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정숙한 도시인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뉴욕에서는 눈만 마주쳐도 “오늘밤에 어때요?”라고 말을 거는 것처럼 나에게 뜨거운 눈길을 보내는 남자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만나게 되니까. 실제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 사람도 꽤 많다. 내가 꽤 매력적인 여자여서가 아니라, 뉴욕이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뉴욕에서라면 굳이 클럽에 가지 않아도 원 나이트 스탠드의 상대를 구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다가가 “실례지만, 몇 시인가요?”라고 묻기만 하면 되니까. 몇 마디 대화가 오가고 “우리 파티에 올래요?”라는 제안을 들으면, 그날 밤만큼은 그와 내가 뜨거운 사이가 된다.
원 나이트 스탠드가 쉬운 도시여서일까. 뉴요커의 연애 사이클은 빠르게 변화한다. “언니, 나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했던 후배 A에게 남자친구의 안부를 물었더니 “누구? 지금 사귀는 애는 언니가 만났던 그 애가 아닐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서울에 있을 때에는 한 남자와 4년이나 사귀었던 A가 뉴욕에 온 이후로 6개월 이상 한 남자를 사귀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A만이 아니다. 뉴욕에 머무는 지인들을 보면 누구나 연애를 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연애 상대가 없는 시기엔 반드시 섹스 파트너가 있다는 사실.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언니, 나는 섹스를 못하겠어”라고 말했던 A는 나만 보면 “언니, 남자친구가 너무 잘해”라며 갖가지 섹스담을 자랑하듯 얘기하곤 한다. 한 도시가 사람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섹스가 빈번한 도시이다 보니, 뉴욕에서는 흔치 않은 섹스담도 자주 듣게 된다. A가 최근 나에게 들려준 얘기는 황당할 정도였다. “언니, 나 어제 진짜 웃겼잖아. 남자친구가 사정한 후에 자기 정액을 먹는 거야. 병원에 갔더니 아연이 부족하다고 했다나? 나에게도 먹으라는데, 우왓, 도저히 못 먹겠더라. 사정을 많이 해서 아연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나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연을 보충하기 위해 정액을 먹는 남자친구도 놀라웠지만, 내가 진짜 놀란 것은 그것을 태연하게 말하며 키득거리는 A의 애티튜드였다. ‘내가 아는 A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패션 잡지에 다니던 시절, 산부인과에 다녀온 후배 A가 “건강을 위해서라도 섹스를 해야겠어요”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섹스를 하면 호르몬 분비가 원활해진대요. 최근 남자친구와 권태기여서 오랫동안 섹스를 안했는데, 치료 차원에서 섹스하자고 해야겠어요”라고 말했던가. 섹스를 하면 얼굴이 예뻐진 것처럼 보인 것이 그저 기분탓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3개월이나 생리를 거르자 ‘심각한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산부인과를 찾은 한 후배가 의사에게 들은 진단은 “섹스를 해보세요”였다. 피부 트러블 때문에 고민하던 한 친구는 피부과의 각종 시술에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더니 남자친구를 만나 정기적인 섹스를 하면서부터 여드름이 싹 사라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섹스를 하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면서 생리 불순과 피부 트러블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 성인 여드름과 함께 피로감이 사라질 뿐 아니라 골격이 강화되어 노화가 방지된다고 한다.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은 사람이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황세영 산부인과의 이희정 씨에 따르면, “섹스를 할 때 베타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인체 각 기관의 노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또한 베타 엔도르핀은 암세포를 파괴시키기도 하고, 기억력 강화와 인내력 강화에도 좋다”고 하니, 이런 논리로 보면 섹스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뿐인가. 섹스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속설도 있지 않나. 15분간의 격렬한 섹스는 여성의 일반적인 하루 섭취 열량인 2000kcal의 절반인
1000kcal 정도를 소모시킨다고 하니, 섹스가 이렇게 건강에 좋은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문란한 성생활은 건강을 망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한 사람과의 정기적인 섹스는 건강에 좋고 여러 사람과의 문란한 섹스는 건강을 망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콘돔 사용을 전제로 한다면, 섹스라이프가 지고지순하건 요란하고 화려하건 그 횟수가 많은 것이 건강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섹스가 이렇게 건강에 좋다고 하니, 나는 뉴욕에 있을 때만이라도 될 수 있는 한 섹스를 많이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박훈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