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양날의 ‘칼’인가
[일요신문] KTX호남선이 개통되면 익산∼서울(용산) 소요시간이 111에서 66분으로 줄어든다. 특히 인천공항까지는 1시간47분이면 갈 수 있게 된다. 3시간 내에 전국 주요 도시로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도시 간 교류가 활발해지는 한편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른 효과를 놓고 전문가들은 유통(쇼핑)과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서 수도권으로 몰리는 빨대(역류)효과가 우려된다는 부정적인 관측과 자치단체의 대응 정책에 따라 지역경제에 보탬을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주장 등 두 그룹으로 양분되고 있다. 이는 KTX 개통이 전북에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사례를 보면 KTX 개통 후 대구는 의료 등 일부 분야에서 수도권 빨대효과가 나타났으며, 울산은 같은 지방도시인 부산으로 원정 쇼핑 등을 떠나는 사례마저 나오고 있다. 반면 수도권 못지않은 탄탄한 쇼핑·관광 등의 인프라를 갖춘 부산은 KTX 개통 후에 MICE(전시·박람회)산업이 급성장하고, 방문객이 급증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일부 시민들이 서울로 유입되는 긍·부정적 효과를 동시에 누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와 국내 사례 등을 들어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역류효과를 우려하는 측과 심지어 그 현상(역외유출)이 미미할 것이라는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KTX호남고속철도 개통이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부정적 사례 ‘대구 울산’
우선 지난 2004년 KTX가 개통된 대구의 사례를 보면 개통 5년 후 대구 경제에 미친 영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수도권에서 의료와 교육, 쇼핑, 문화예술 행사를 이용했다는 응답이 80%대로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대구 역세권 인근 상인 62%는 KTX 때문에 오히려 연간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대구경북연구원 곽종무 박사는 “장거리 교통수단은 서울, 부산과 같은 끝지점의 도시가 중간에 위치한 대구보다 이용객이 더 많다”며 “특히 서울과 부산이 유통과 의료, 관광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KTX 확대로 ‘빨대효과’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의 경우도 지역 경제가 수도권으로 빨려드는 효과는 물론 지역간에도 빨대효과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울산발전연구원은 지난 2010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KTX개통 후 울산의 소비자들이 부산의 고급 쇼핑센터로 몰리는 현상을 보였다.
◇긍,부정 혼재 사례 ‘부산’
부산의 경우 그야말로 ‘양날의 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KTX 개통이후 관광 수요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의 경우 서울을 통해 KTX로 부산을 오거나, 부산을 거쳐 KTX로 타 지역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게 지역 관광업계의 분석이다.
이처럼 부산이 지방의 관광,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서울~부산 장거리 구간 교통수단 분담률은 KTX가 58%(2011년 기준)로 가장 높았다. KTX가 개통 전인 2003년에는 항공(39%)이 가장 높았지만 이제 순서가 바뀐 것이다. KTX의 최다 이용구간은 서울~부산으로 KTX 전체 이용객 중 13.7%(1일 2만 명)를 차지했다.
이 같은 관광·비즈니스 분야의 긍정적 변화와는 달리 지역 의료·문화계는 KTX 개통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역 중소병원에서 1차 진료 후 지역 대학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했으나 이제는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지역 공연·전시업계에서도 “서울에서 열리는 이름 있는 작가의 전시회나 유명 공연의 경우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분들이 확실히 늘어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같은 해 서울과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부산시민의 서울 활동 변화는 개통 전 17.2%에서 개통 후 26.0%로 8.8%포인트 증가했지만 서울시민의 부산 활동은 1.2%에서 3.4%로 2%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부산시민의 서울활동을 살펴보니 공연문화활동이 11.2%포인트로 가장 높게 증가했고, 관광레저(9.9%포인트), 의료(9.2%포인트)순이었다. 서울시민은 KTX개통 후 부산에서 관광레저활동(6.9%포인트)을 하는 비율이 가장 높게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KTX개통에 따른 대도시간 역류효과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일본·프랑스·독일 등 해외 사례
1964년 도쿄∼오사카간 고속열차인 신칸센을 첫 개통한 일본은 정차역이 있는 도시의 사업체 수와 매출액, 생산량, 인구, 역세권 성장의 긍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항공수요의 감소, 무박 당일 여행 증가에 따른 숙박·여행산업 불황, 대도시 쇼핑객 유입 등 수도권 빨대효과에 따른 지역 쇼핑산업 붕괴 등의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다.
1981년 파리∼리용간 떼제베를 개통한 프랑스는 비행기와 경쟁하는 고속철을 내세워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인근 국가까지 개통함으로써 사실상 국경을 무너뜨리고, 프랑스를 국제 중심지로 부상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독일은 고속철도인 ICEs 개통 후 교통 수단별 시장 점유율이 크게 변화했다. 점유율이 미미했던 고속철도 등 기차의 점유율이 1.86%에서 28.2%로 급증했으며, 항공기는 5.0%에서 3.5%로, 승용차는 76.4%에서 68.3%로 떨어졌다.
◇역류효과 “미미하다” 견해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개통되는 고속철도의 경우엔 각 지역별로 유명 백화점의 체인점 등 대규모 쇼핑시설이 이미 마련돼 있는데다, 온라인 쇼핑의 확대 등 유통 구조의 변화, 반나절 생활권에 따른 문화 예술 공연팀의 지역 공연 접근성 향상, 지역 내 의료기술 선진화 등이 이뤄진 만큼 역류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전북발전연구원의 이창현 박사는 “자치단체의 대응 여하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될수도, 기회가 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전북의 경우 논란이 되고 있는 익산역사 이전문제 등 KTX정차역 해결을 비롯한 수도권 유출이 우려되는 의료와 쇼핑, 교육 분야 등의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