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최문순 지사(왼쪽 세번째)가 기자시절 인연을 맺었던 송 씨(왼쪽 네번째)는 최근 최 지사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위는 송 씨가 증거로 제시한 사진으로 송 씨가 제공한 산삼주를 들고 있는 최 지사의 모습.
지난 1993년 최문순 지사는 MBC <카메라출동> 소속 기자였다. 송 씨는 부산에 본사를 두고 현대건설의 전국 현장에서 방수부문을 맡아 한 해 150억 원가량의 매출을 내는 1차 협력사 송영건설의 대표였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 때문이었다.
송 씨는 “사정이 어려웠던 현대건설은 협력업체들에 지급해야할 공사 대금 중 일부를 빼고 결제했다. 내가 못 받은 돈은 4억 원가량이었다”고 전했다. 일종의 고통분담이었다. 송 씨의 회사는 예상치 못한 4억 원이 결제되지 않으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다급해진 송 씨는 주위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한 사람이 나서서 MBC에 제보했다. 송 씨 지인의 제보를 받고 취재를 나온 기자가 바로 최 지사였다.
보도는 나갔지만 송 씨는 4억 원을 받지 못했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최문순 지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보도 이후) 현대건설의 하청업체였던 송 씨 회사가 현대건설의 물량을 받지 못하면서 어려워졌던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송 씨는 최 지사에게 ‘4억 원을 받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최 지사도 달리 받아줄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최 기자’는 MBC 사장을 거쳐 지난 2011년 보궐선거를 통해 강원도지사에 당선됐다. 송 씨는 “강원도지사라면 강원도의 왕인데 내 4억 정도는 쉽게 받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송 씨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지난 2011년 7월 새벽 강원도지사 공관을 찾아가 15년여 만에 최 지사를 만났다. 송 씨는 그 자리에서 최 지사 때문에 겪게 된 어려움을 말하며 살길을 터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송 씨는 “그렇게 처음 만난 이후 지속적으로 부탁하니까 최 지사가 평창올림픽 부실공사 방지대책위를 만들어서 위원장을 시켜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취업을 알아봐주는 데 미안하거니와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산삼과 산삼술, 봉삼 등 원가로만 1500만 원이 넘는 선물을 줬다”고 주장하며 산삼 구매 영수증을 증거로 검찰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최 지사는 “송 씨 본인이 산삼 재배를 한다면서 자기가 술을 담갔으니 드셔보시라고 해서 마셨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후부터 양측의 진술은 엇갈린다.
고소장을 제출한 송 씨의 모습.
송 씨가 <일요신문>에 제공한 지난 4월 통화 녹음에서 최 지사의 비서관이던 A 씨는 “이력서를 먼저 좀 주시면 얘기를 좀 해볼게요. 너무 자세하게 안 해도 주로 하신 일이 있었다면 적합한 자리가 있으신지 한 번 보려구요”라고 했다. 송 씨는 이 녹취를 두고 최 지사가 비서에게 자신의 취업 자리를 알아봐준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A 씨의 말은 다르다. 그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송 씨의 이력서를 받은 것도 사실이고, 일자리를 알아봐준 것도 사실이다. 다만 송 씨가 말한 것처럼 고문 자리는 말도 안 된다. 나도 못 가는 자리를 어떻게 알아봐주나. 공관에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니까 청소부나 경비 자리를 알아봐주려고 했지만 송 씨가 거절했다”고 반박했다. 최 지사도 “(보도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다니까 인간적인 정리로 도와줬다. 하지만 송 씨가 취직을 시켜달라고 하고 예산을 달라고 하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해서 인연이 끊겼다”고 보탰다.
A 씨는 “송 씨가 경비나 청소부 자리에 만족을 못하고 내 선으로 해결이 안 돼 이력서를 최 지사 특별보좌관인 B 씨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송 씨에 따르면 이력서를 받은 B 씨가 자신을 보자마자 “왜 이제야 오셨느냐”며 “바로 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말하면서 ‘곧 세월호 관련 행사가 있는데 그 자리를 맡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B 씨는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까 없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송 씨가 공개한 또 다른 녹취 파일에는 강원개발공사 임원인 C 본부장과의 대화도 있다. C 본부장은 “도지사 비서실에서도 사장님(송 씨)한테 잘 좀 검토해보라며 전화가 계속 온다”며 “알펜시아 사장도 불러서 방법이 없느냐, 도에서 지사님이 특별히 부탁하는 것인데 방법이 없느냐고 했다”고 했다. 40분여 대화에서 C 본부장은 송 씨의 나이가 60세인 탓에 57세가 정년인 공기업에서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도지사의 기술보좌관을 추천했다.
송 씨는 “도지사한테 부탁하면서 청소부나 경비 자리를 생각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나도 사정이 어려운데 미치지 않고서야 경비하려고 산삼을 바치겠느냐”고 거듭 말했다. 송 씨는 “강원개발공사 임원과 알펜시아 사장이 모여서 이야기한 것이 청소부 자리겠느냐”고도 했다.
송 씨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만약 돈이라도 준다면 바로 없었던 일로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최 지사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최 지사는 “만나서 잘 해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다 녹음을 하고 나중에 협박 수단으로 삼는다”며 “저희가 보기에도 딱하다. 옛날 보도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다고 하니까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은데 또 접촉하면 말이 나올까봐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춘천지검 관계자는 “송 씨가 사전선거운동과 뇌물수수혐의로 최문순 지사를 고발했는데, 사전선거운동은 지난 12월 4일로 공소시효가 만료돼 종결했고, 뇌물수수 혐의는 계속 수사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