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하느님이라 부르며 황당한 교리를 퍼뜨려온 이 남자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은 모두 9명. 실제로 몸을 내준 여성은 이보다 많지만 상당수 여성이 아직까지도 ‘용화세계’의 미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계룡산과 지리산 등지에서 두루 역학을 배웠다는 김승재씨(가명•64). 김씨는 지난 90년부터 충북 청원군에 집을 마련하면서 역술인의 삶을 시작했다. 방 두 칸짜리 한옥에서 간판조차 없이 초라하게 출발한 역술원이었다.
이에 김씨는 지난 92년부터 자신을 신격화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신도들을 대상으로 자신만의 ‘구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교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너희가 아느냐. 썩을 대로 썩어 있는 이 세계는 곧 종말을 맞이할 터이고, 종말 이후에는 ‘용화세계’가 펼쳐질 것이니라. 용화세계란 모든 악이 사라진 유토피아로 너희가 용화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 ‘용화세존’에게 입향을 받아야만 할 것이니라.’ 자신의 기운이 신도의 몸에 들어간다는 뜻의 ‘입향’은 단어 자체가 암시하듯 사실은 성관계의 다른 이름에 불과했다.
입향의 대상은 주로 10대∼20대 초반의 여신도들이었다. 자신의 집 안방에서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성욕이 동할 경우 “내 너와 독대를 해야겠느니라”는 따위의 말로 작은 방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현혹된 여신도들을 상대로 입향 의식을 치렀다.
‘구원’의 징표였을까. 자신에게 입향을 받은 여성 신도들에게는 현금 5만∼10만원이 든 봉투에 ‘선생님’이라고 새겨진 도장을 찍어 나눠줬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신도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헌금’이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이런 방법으로 주로 나이 어린 여성들을 농락해온 김씨는 ‘선적’이란 미명 아래 이 여성들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기도 했다. 이 선적이란 얼마 전 TV 드라마를 통해서 유명해진 후삼국 시대 궁예의 ‘관심법’과 유사한 일종의 초능력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에게 입향을 받은 여신도가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는 경우 자신은 집에 있더라도 유체이탈을 통해 그 광경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는 것.
경찰에 따르면 이 선적의 영험함을 그대로 믿은 여신도들은 이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씨가 주장하는 황당한 교리에 혹해 그를 도와 여성 신도들의 입향에 앞장선 일부 여신도들도 문제였다.
지난 91년께부터 언니와 함께 김씨의 역술원에 출입하기 시작한 유소은씨(가명/45)는 그에게 몇 차례 입향을 받고서 열성 신도로 발전한 케이스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유씨는 지난 94년부터는 아예 직업을 버리고 김씨의 비서로 나섰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가 담당한 업무는 김씨에게 입향을 받아야 할 여신도들의 생리일을 파악해 ‘출석일’을 정해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딸을 둔 최명선씨(가명/34)는 피부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선뜻 김씨에게 입향을 받게 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의 딸 김소연양(가명/12)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역술원에 출입을 시작했다. 매년 병원을 간다고 학교를 조퇴한 김양은 3학년 때부터는 아예 병원도 가지 않고 역술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김씨의 ‘입향 행각’에 제동이 걸린 것은 그에게 입향을 받으러 다니던 세 자매의 신고 때문이었다. 각각 중학교 시절부터 김씨에게 입향을 받으러 다니면서도 평소 “나에게 입향을 받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라”는 김씨의 당부 때문에 입향 사실은 서로에게 비밀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김씨의 영험함에 차츰 의심을 품기 시작한 이들 세 자매. 급기야 용기를 내어 서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은 이들은 김씨가 내세운 교리라는 것이 몇몇 다른 종교에서 빌어와 끼워맞춘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됐다.
결국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몸소 ‘입향’을 베풀며 노익장을 과시했던 김씨는 이들 자매의 신고로 용화세존에서 하루아침에 파렴치범으로 전락했다. 김씨의 조사를 담당한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는 “체계적인 교리도, 별다른 사상도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이 속아넘어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