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 한인 부부사건’이 바로 그것. 뚜렷한 직업을 갖고 있지 않던 재일교포 남편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던 부인의 불륜을 의심한 끝에 아내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사건의 골자다.
‘아악.’ 지난 1월29일 새벽. 일본 도쿄의 중심가인 신주쿠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아파트 8층 베란다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물체가 아스팔트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투신 자살한 사람은 평소 한인 사회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통하던 신진수씨(가명•49). 그는 한국에서 결혼에 실패한 뒤 9년 전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신씨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씨의 지친 삶에 새로운 활기가 생겨난 것은 일본으로 건너온 이듬해에 이영숙씨(가명•47)를 만나면서. 이씨 역시 신씨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남편과의 결혼에 실패한 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외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비슷한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은 이내 결혼했다.
경제적 기반이 전혀 없었지만 마음이 착했던 신씨와, 억척스러운 반면 강한 생활력을 지닌 이씨의 상반된 성격도 사랑전선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바로 이 부분에서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신주쿠에서 한식당 세 곳을 경영하며 월 1천만엔(약 1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던 아내 이씨가 일에는 도통 열의를 보이지 않는 남편을 마뜩찮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자신은 가게 세 곳을 쫓아다니며 동분서주했지만, 남편은 늘 이웃 사람들과 바둑을 두거나 낚시로 소일할 뿐이었다. 이들 부부의 불화는 1년 전부터 급격히 심해졌다. 이때부터는 ‘경제적 능력’과 ‘고운 심성’이라는 서로의 장점은 온데간데 없고 염증만 불거졌다.
신씨는 신씨대로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아내의 태도가 늘 불만이었다. 이 때문인지 술을 마시는 횟수도 자연스레 늘었다. 이씨 입장에서는 일도 하지 않는 남편이 이따금 술에 취해 들어와 ‘남편을 무시한다’며 싸움을 걸어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무능력한 남편’이란 아내의 말에 신씨는 새로운 사업을 해보기 위해 불고기집은 물론 여행사, 유학생 기숙사 사업을 구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보면 불경기와 경험 부족으로 늘 암초에 부딪쳤다. 게다가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돼 있던 관계로 늘 자금이 아쉬웠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전 남편 신씨는 평소 구상하던 불고기집을 어렵게 시작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여행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은 불경기로 인해 구상만으로 접어야 했다.
유학생 기숙사 사업은 어렵게 건물을 얻어 계약을 하기는 했지만 내•외부 개조 공사비가 만만치 않아 또다시 아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사고 당일에도 신씨는 인근의 친구들과 바둑을 두고 새로 연 불고기집에서 술을 한 잔 걸쳤다.
술기운이었을까. 아내보다 먼저 귀가한 신씨는 새벽이 다 돼서야 귀가한 아내에게 돈 이야기를 꺼냈다. 기숙사 내•외부 개조 공사에 들어갈 돈과 아직은 적자를 내고 있는 불고기집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던 것. 피곤에 지친 아내 이씨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단칼에 신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무안해진 남편 신씨가 급기야 아내의 사회생활에서 트집을 잡고 나섰다. “당신, 남자가 생긴 것 아니냐”며 시비를 걸고 나선 것. 아내도 지지 않았다. “그래 잘한다. 돈도 못벌어오는 바보같은 남편이 이제 마누라까지 의심한다. 차라리 이참에 갈라서자.” 가뜩이나 술에 취한 신씨는 부인의 ‘바보같다’는 말에 격분,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부엌에서 흉기를 갖고 집어들고 들어와 아내를 찌르고 말았다. 도쿄 신주쿠경찰서에 따르면 신씨는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처형과 아들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한 차례 광풍이 지나간 뒤 신씨는 정신을 수습했다. 하지만 아내는 심한 출혈로 가늘게 신음하고 있었고, 처형과 아들 역시 쓰러져 있었다.
이미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한 신씨는 베란다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씨의 아내도 신주쿠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