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이 뭐길래? 불법.혼탁 ‘위험수위’
공명선거에 대한 취지를 비웃듯 부안에서는 불출마를 조건으로 금품을 건넨 현직 조합장이 구속되는 가하면 전·현직 인사들을 주축으로 편 가르기 및 흑색비방전이 비밀리에 동원되는 등 말썽을 빚고 있다.
전북에서는 농협 94개를 비롯해 산림조합 12개와 수협 3개 등 총 109개 조합에서 조합장을 선출한다. 조합장 투표에 나서는 조합원만 농협 23만여명, 산림조합 4만여명, 수협 7천여명 등 모두 27만7천명 에 달할 것으로 전북선관위는 추산했다.
전북농협은 내년 3월 선거에 대비해 선거관리지도본부를 개설하고 공명선거 교육에 이어 부정선거감시 및 선거지도에 돌입하는 등 선거관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그동안 개별로 치러지던 농협과 산림조합, 수협등의 조합장 선거가 전국 동시에 치러지는 것은 처음으로 벌써부터 지방선거 못지않은 뜨거운 선거전이 예상된다.
◇ 불법.혼탁 선거 “도 넘었다”
하지만 조합장 선거가 전국 동시에 치러지면서 벌써부터 불법ㆍ혼탁 선거 등이 감지되고 있다. 과거 끊이지 않던 불법 선거의 폐단을 막기 위한 취지로 실시한 동시선거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실제 부안 소재 현직 농협조합장 A(61)씨는 상대후보에게 선거 불출마를 대가로 수천만원을 제공한 혐의(후보자 매수)로 전국에서 최초로 검찰에 구속됐다.
김제의 B농협 조합장 입후보예정자 C씨는 해당 조합원 330명에게 추석선물을 돌렸다가 적발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등 혼탁 선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조합장 동시 선거가 ‘돈 선거’ 등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단속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지역 일부 조합은 벌써부터 내부비리 폭로 등 조합장을 타깃으로 한 흑색비방전마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협 조합장 선거는 경영상 큰 문제가 없는 한 도전자 보다는 현 조합장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 같은 현 조합장 프리미엄을 이겨내기 위해 비리폭로나 비방이 도전자에게 선거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선거 이후의 적잖은 후폭풍이 될 전망이다. 선거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지 않는 후보자들의 잇단 법적 소송전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막강한 조합장 ‘권한’...기관장으로 ‘입신’
농.수.축협 조합장이 도대체 어떤 자리기에 ‘교도소 담을 넘나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선되려고 사활을 거는 것일까?
우선 조합장 선거가 과열로 치닫는 이유는 조합장의 ‘제왕적’ 권한 때문이다. 임기 4년의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합별로 편차가 있지만 매년 5천만∼8천만원의 급여와 성과급, 판공비, 유류지원비, 활동지원비 등을 받는다. 비서와 차량이 제공되는 조합도 있다.
또 자금의 조달과 공급, 예금과 적금 대출 등 금융업무를 총괄하며 조합 직원의 인사, 예산, 각종 사업에 대한 권한을 갖는 것도 조합장이 누리는 막강한 권한 중의 하나다.
게다가 도의원, 시.군의원 등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도 하며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각 읍.면 단위로 조직된 농.수.축협의 조합장 당선은 곧 해당 읍.면장 이상의 지위를 가진 기관장 반열에 올라서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일반인’에서 일약 ‘기관장’으로 신분이 수직상승하는 셈이다.
현직 농협 조합장의 한 측근은 “읍면 단위를 통틀어 실질적으로 가장 힘이 센 기관장이 농.축협 조합장”이라며 “특히 지역에서 기관장 대우를 받기 때문에 실리와 명예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북 일선 시군의 경우 각 단위 농.수.축협 조합장 역임 후 지방선거에 나서 지자체 단체장이나 시.군.도의원에 당선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농민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지역의 일부 시.군의 경우 지역 농.수.축협 조합원은 곧 지방선거의 또 다른 유권자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 불.탈법 근절하려면...“권한 축소해야”
일부 전문가들은 조합장 자리가 주는 영향력과 당선 후 기대감,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특수한 선거 환경 등이 조합장 선거의 불.탈법을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서해대 김성진(54) 교수는 “출마 후보자가 당선되고 나서 얻는 영향력에 대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선거 때 무리수를 두는 경향이 있다”며 “조합장 선거의 불.탈법 고리를 끊으려면 주어진 권한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선거인수가 적은 조합장 선거는 일부 유권자만 포섭하면 당선될 수있다는 생각때문에 혼탁해지기 쉽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유권자인 조합원이 마을 이웃이나 가까운 인척, 선후배 등으로 얽히다 보니 금품, 향응 제공에 대한 죄의식이 무뎌지는 것도 탈불법을 조장하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지역 안팎에서 행사하는 농.수.축협 조합장의 ‘제왕적’ 권한이 조합장 선거를 불.탈법의 온상으로 전락시키는 만큼 조합장의 권한을 대폭 줄이고 이사회와 조합원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도내 모 조합장 P(60) 씨는 “조합장은 기관장이나 입신을 위한 교두보가 아니라 그저 지역 농민의 대표라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조합장이라는 자리는 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만큼 권한을 독단적으로 행사하기보다는 이사회와 조합원에게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선관위 관계자는 “전국에서 처음 치러지는 동시 선거인만큼 부정선거나 혼탁선거 우려가 있지만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며 “출마자나 조합원들 스스로도 의식을 바꾸고 이번 전국 동시 선거를 계기로 공명선거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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