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일 아파트 경비원의 신고로 화재 현장에 출동한 수사진은 먼저 세 식구 가운데 희생된 교수와 할머니를 제외한 아들만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 거액의 예금통장과 현금이 그대로 있었다는 점,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다는 점 등에서 내부인의 범행일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피의자 이씨도 경찰의 의심을 살 것에 나름대로 대비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피의자가 짜맞춰 놓은 몇 가지 ‘함정’은 자칫 수사에 혼선을 줄 수도 있었을 정도로 치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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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의자는 나름대로 ‘완전범죄’를 노려 증거들을 조작하거 나 거짓된 행동을 보였지만 베테랑 수사관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진은 현장검증 장면. | ||
피의자가 보여준 눈물 연기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도 되풀이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경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복도에서 또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베테랑 수사관들에 따르면 불의의 사고나 사건으로 가까운 사람이 희생됐을 때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오는 이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일치한다고 한다. 아무리 급히 연락을 받았더라도 일단 시신이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라야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
반면 형사들 은어로 ‘아이고뗌’이라 불리는 거짓 울음은 이와 다르다고 한다. 이씨는 대성통곡을 했지만 베테랑 형사들이 보기에 그 울음이 ‘아이고뗌’과 흡사했던 것이다.
어설픈 눈물 연기 덕분에 이씨의 첫 번째 트릭이 쉽게 간파를 당했다면 두 번째 함정은 보다 치밀했다. 피의자 이씨와 함께 경찰서로 온 수사진은 먼저 그의 휴대품을 살펴봤다.
형사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집열쇠. 피의자가 살던 아파트 현관에는 세 종류의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맨 아래쪽에 기본 개폐장치가 있고 그 위쪽에 나중에 별도로 설치한 보조 잠금장치 두개가 있었던 것.
하지만 형사들이 이씨의 주머니에서 발견한 열쇠는 맨 위 보조잠금장치 열쇠 하나뿐이었다. 형사들은 순간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현장감식 결과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파쇄한 잠금장치는 맨 아래에 있는 기본잠금장치였다. 즉 당시 현관문에 맨 아래쪽 잠금장치만 잠겨 있었다는 것인데,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한 이씨에게서는 맨 위 잠금장치의 열쇠만 발견된 것.
풀리지 않던 ‘열쇠의 수수께끼’는 피의자가 마련해 둔 마지막 세 번째 함정, 즉 알리바이 조작이 들통난 다음 자연스레 풀리게 된다. 범행 당일 이씨는 날이 밝자마자 여자친구를 만난 뒤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인 문씨를 찾아갔다. 사건이 벌어진 당시 자신이 그곳에 없었다는 사실(알리바이)을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이씨와 문씨는 사건 당시 함께 있었다고 입을 맞추기로 했다. 경찰에서 이씨가 사건 발생 시각의 행적에 대해 ‘친구집에 가서 자고 아침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진술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
피의자의 말대로라면 알리바이는 완벽하게 성립되는 셈이다. 하지만 경찰은 여기서 ‘심리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단 둘을 분리시켜 심문하는가 하면 서로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귀엣말하는 시늉을 일부러 보여주며 서로를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
경찰은 결국 지난 11일 오전 2시께 이씨로부터 범행일체를 자백받기에 이른다. 물론 풀리지 않았던 ‘열쇠의 수수께끼’는 이씨가 친구 문씨의 집에 숨겨놓은 가방에서 문제의 맨 아래쪽 열쇠가 발견되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