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을 부추기는 철부지 여학생의 멘트로 생각하면 오산. 최근 일부 화상채팅사이트에서 은밀히 오가는 그들만의 암호다. 달린다는 것은 곧 ‘자위행위를 한다’ 혹은 ‘옷을 벗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최근 인터넷 화상채팅 사이트에서 음란한 행위를 일삼은 남녀 46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화상채팅 사이트에서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서로 보여주거나 심지어 성행위 장면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준 혐의다.
특히 이번에 검거된 46명의 피의자 가운데는 현직교사와 공군 초급장교, 간호사, 연극배우는 물론 고교생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갖은 부류의 남녀가 모여 펼친 음란의 화상채팅, 그 요지경 세상 속으로 들어가봤다.
대구지방청 사이버수사대 A 수사관. 평소와 다름없이 인터넷에서 순찰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지난달 S 채팅사이트를 찾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묘한 제목의 방 하나를 발견했다.
방제목은 ‘오빠 달려’. 그저 폭주족을 동경하는 철없는 여학생들의 모임이겠거니 생각하고 무심코 채팅방을 클릭한 A 수사관은 그 순간 화들짝 놀라야 했다. 자신이 입장한 방에 사람의 얼굴 대신 온통 신체의 은밀한 부위만 전시돼 있었던 것.
A 수사관의 눈은 휘둥그래졌지만 그는 이내 방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 방에서 내건 유일한 조건, ‘모두 벗어야 한다’는 규칙을 몰라 옷을 입은 채 쭈뼛거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리 수사가 목적이라고 해도 경찰이 네티즌 앞에서 홀랑 옷을 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방장으로부터 강퇴를 당한 A 수사관은 ‘자위’나 ‘누드’ 등 성과 관계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채팅방 개설 원칙을 피해가기 위해 ‘달리다’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인터넷 상에서 ‘투명인간’이란 아이템을 구입하면 자신의 존재를 감춘 채 채팅방에 입장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냈다. ‘투명망토’를 뒤집어쓰고 음란 채팅방 재잠입에 성공한 A 수사관.
이윽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5∼6명의 남성이, 아니 남성의 은밀한 부위가 말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방 한쪽에서는 음란 동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란 동영상은 ‘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방장의 살뜰한 배려.
A 수사관은 남성 회원들이 대부분인 문제의 방에 이따금 여성 회원도 동참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물론 여성이라고 해서 방의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남성 회원과 똑같이 옷을 벗거나 심지어 자위행위까지 보여줘야 했다고 한다. 다음은 이번에 경찰에 검거된 피의자들의 실제 경험담.
간호사로 재직중인 윤지영씨(가명·24). 퇴근한 뒤 집에서 채팅을 즐기고 있던 그녀는 ‘준비된 사람만 들어오세요’란 제목의 방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이끌린 윤씨는 무심코 문제의 방에 입장했다.
준비없이 들어간 윤씨의 눈 앞에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낯선 사내들이 바지를 내린 채 ‘달리고’ 있었던 것. 뭇사내들의 은밀한 행위를 보자 윤씨는 자신도 모를 묘한 흥분을 느꼈다. 간만에 여성이 입장하자 남성 회원들 역시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들뜨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었다.
불붙은 남성들은 간호사 윤씨에게 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설 것을 재촉했다. 그러나 결혼도 하지 않은 윤씨가 자신의 소중한 곳을 생면부지의 남성 앞에서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망설이는 그녀에게 남성회원들의 성화가 쏟아졌고, 마침내 ‘어차피 직접 만날 사람들도 아니고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마침내 과감하게 팬티를 내렸다. 화상카메라는 이미 ON 상태로 변경된 이후였다. 곳곳에서 남성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대담해진 윤씨는 남성 회원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얼굴을 제외한 신체 구석구석을 꼼꼼히 보여주며 남성 회원들이 달리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 회원이 동참하면 남성들이 달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는 것이 A 수사관의 설명.
공군 상사인 이종환씨(가명·37)는 자신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박윤희씨(가명·46)와 함께 커플로 나선 경우다. 사실혼 관계였던 이씨와 박씨 두 사람은 지난 2월5일 오후 2시께 이씨가 살던 아파트에 자리를 함께 했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날 자위행위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의 성행위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혐의다.
그런가 하면 현직 교사인 이문원씨(가명·47)는 방학을 맞아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은밀한 욕망을 해소하다 망신을 산 케이스. 부인은 물론 아이들까지 두고 있던 이씨는 아이들과 부인이 잠시 집을 비우자 선생님의 체면은 벗어던진 채 카메라 앞에 알몸으로 섰다.
경찰은 이들을 포함해 남성 43명과 여성 3명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또한 현직 교사와 간호사, 공군 장교에 대해서는 소속 단체인 학교와 간호사협회, 헌병대 등에 이 사실을 통보하기도 했다. 한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이 덕분에 톡톡히 망신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대구지방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이같은 음란행위는 이번에 단속한 S 사이트뿐만 아니라 많은 화상채팅 사이트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고 전제한 뒤 “경찰이 제한된 인원으로 일일이 단속하는 것보다는 네티즌 스스로의 자성이 더욱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