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 턴어라운드
지난 연말 재계에서 “작황이 좋았다”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신년 초 4분기 실적이 나오면 정확한 집계가 나오겠지만, 3분기까지만 해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란 한탄이 가득했다.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는 물론 현대중공업, 포스코, 정유 4사 등 10대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의 영업이익 규모가 크게 줄었거나, 대규모 영업적자를 냈다. 2015년의 최대 화두가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실시한 ‘2015년 경영환경 조사’에서 600개 기업 중 81.6%가 “제조업과 수출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지난 9월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갤럭시노트4 월드투어’ 행사에서 소비자들이 갤럭시기어 VR을 체험하는 모습. 오른쪽은 12월 16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신차 발표회에서 현대자동차가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선보이고 있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연합뉴스
새해에도 역시 재계 대표주자 삼성전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한계와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2014년 3분기에 바닥을 치고 4분기부터 실적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투자금융업계에선 삼성전자의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3분기 대비 9.08%, 18.19%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예단할 수 없을 만큼 변수가 즐비하다. 신제품 ‘갤럭시6’의 글로벌 경쟁력이 실적호전의 열쇠를 쥐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환율 변동과 10조 원 넘게 쏟아 부은 한국전력 부지 고가 매입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 3분기 실적은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새해 상반기 중 한전부지 활용을 놓고 청사진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5위 자동차 기업의 변신으로, 내수 경기와 증시에도 큰 파급력을 지닌 변수다. 현대차는 새해 상반기 5년 만에 선보이는 신형 ‘아반떼’를 기대작으로 꼽고 있다. 전기 충전과 가솔린·디젤 주유가 모두 가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시대를 앞서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2014년 2~3분기 연속 1조 원대의 영업적자로 ‘쇼크’를 몰고 왔던 세계 최대 조선업체 현대중공업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경영진 교체, 임원 30% 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한 이후 셰일가스 붐이 지속돼 가스운반선 수요증가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글로벌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 특성상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편이다.
조선업계 못지않은 최악의 해를 보낸 정유업계는 새해 국제유가 추이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면서 불안한 세밑을 보내고 있다. 글로벌 경기회복 지연으로 유류 수요가 줄어들어 수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원유가가 내리막을 걷는 상황에선 정제마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선 새해 상반기 미국과 중동 산유국 간 ‘유가전쟁’이 진정되면서 국제유가가 바닥을 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국제환율과 함께 가장 변동성이 심한 변수여서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산업구조 재편
경쟁력이 약한 부문을 털어내는 구조조정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대세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방위산업과 정유부문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한 게 대표적이지만, 사실 국제 산업구조상 중국 기업들의 추격과 글로벌 산업이동의 측면에서 경쟁력을 잃을 부문에 대한 재편은 현재 한국 기업들의 수준에서 긴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사업 재편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종별, 부문별로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의 경우 중국 업체들과 경쟁력이 약해진 중간재 생산업체들 간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이 예상된다. 석유화학업계, 중소 조선·철강업계 등이 주목 대상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경우 새해에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핀테크(IT금융), 헬스케어, 자동차 전자부품, 신소재 등의 신사업들이 주력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분야 기업들 간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려는 대-중소기업 간 M&A와 전략적 제휴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성장 모멘텀을 강화하는 전략이 재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이다.
# 경영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새해에 가장 많은 핫 이슈를 쏟아낼 포인트가 바로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이다. 이에 대한 주요 그룹들의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목이 집중되는 곳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중인 재계 1위 삼성그룹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등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따라 재계 전체의 흐름까지 달라질 수 있는 까닭에서다.
이 부회장 등 삼남매는 삼성SDS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상장으로 10조 원이 넘는 차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주가변동에 따라 규모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상속받는 데 드는 추산 비용 11조 원(이 부회장은 7조 원)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5년 분할 납부 방식도 있어서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상속과 함께 지주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을 높여 그룹 전체의 경영권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본격적인 상속과 개편작업은 삼성SDS 지분의 보호예수기간(상장 후 6개월)이 경과해 지분을 현금화할 수 있는 5월 중순 이후다. 이 회장의 재산 일부를 상속하면서 ‘삼성전자 인적분할→삼성전자홀딩스(가칭)·제일모직 합병→삼성 지주사 출범’ 순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진행된다는 게 가장 많이 제기되는 시나리오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의 장남 구광모 ㈜LG 시너지팀 부장이 지난 11월 말 그룹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면서, 오너 4세 경영승계 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2월 24일 구 상무는 구본능 희성전자 회장이 보유했던 ㈜LG 지분을 증여받아 지분율 5.83%로 구본무 회장(10.79%)과 구본준 부회장(7.57%)에 이어 3대주주로 올라서며 이러한 해석에 힘을 보탰다. LG 측에선 “근거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구 회장의 ‘70세 은퇴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구본무 회장은 오는 2월 10일로 만 70세가 된다. 구 회장의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도 만 70세가 되던 1995년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룹 주변에선 구 회장의 경영활동이 왕성하고 구 상무의 경험과 연배를 봐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다수지만, 여전히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슈가 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선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이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로 승진한 것을 놓고 경영권 승계 작업 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입사 5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다. 권오갑 사장이 현대오일뱅크에서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한 것도 경영위기 극복의 ‘구원투수’라는 점과 함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한진그룹은 오너 3세로의 후계 경영 윤곽이 잡히는 듯했으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파문으로 오리무중이 돼버렸다. 위기를 수습하고, 여론의 저항감을 줄이면서 장남 조원태 대항항공 부사장과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를 포함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어떻게 이어갈지가 관심사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실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주사인 ㈜한화의 지분을 늘리는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발맞춰 한화그룹은 지난 24일 김동관 실장의 상무 승진을 발표했다. 동원, 동선 씨와 함께 삼형제가 지분 100%를 소유한 한화 S&C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 회사로 꼽히고 있다. 삼성그룹의 삼성SDS 활용법과 유사하게 상장 후 합병의 행로를 보일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되는 국면이고, 형제 간 조율을 거쳐야 하는 GS그룹과 두산그룹의 4세 경영권 승계는 불투명한 상태다.
# ‘오너 리스크’ 해법
왼쪽부터 최태원 SK 회장, 이재현 CJ 회장, 조석래 효성 회장.
이 같은 분위기가 갖가지 위법행위로 법의 심판을 받은 재벌총수에 대한 ‘불관용’ 기류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수준으로 확산될지도 새해 재계의 관심사다. 총수들의 ‘경영공백’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고민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유다.
최태원 회장이 2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SK그룹, 이재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남겨 놓고 있는 CJ그룹, 조석래 회장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효성그룹 등이 어떠한 방향으로 ‘오너 리스크’에 대응할지도 재계의 기류를 짚을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되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인 가석방 논란과 관련, 요건을 갖춘 최태원 회장이 수혜를 입을지 연초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웅채 언론인